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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일본도 배우려는 한국의 교육정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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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염종순 일본 오사카부 기술고문

염종순 일본 오사카부 기술고문

지금 세상에는 호모사피엔스와 포노사피엔스(Phono-Sapiens)가 존재한다. 호모사피엔스는 보통의 인류를 일컫지만, 포노사피엔스는 늘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두 인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스마트폰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어마어마한 능력 차이가 발생한다.

이제까지 인류는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야 했고 지식의 주요 습득 수단은 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검색만 할 수 있다면 굳이 다양한 지식을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는 데 문제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배우지 않고도 검색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디지털 인재 육성에 나선 일본
한국 교사·학생의 IT능력 호평
전자교과서·칠판 보급 늘려야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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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시대에는 유용한 경험이나 기술, 즉 노하우(know how)가 중요했다. 디지털 혁명시대에는 필요한 지식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know where), 또는 누가 그 지식을 가졌는지를 아는 것(know who)이 더 중요한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1989년 글로벌 시가총액 톱10과 2020년 글로벌 시가총액 톱10 기업의 변화를 보면 세상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1989년 1위는 전통적인 장치설비업종인 일본 NTT였고, 일본의 금융 관련 기업이 5개나 포함됐다. 톱10 중 일본 기업이 7개나 됐다. 그러나 2020년 톱10 상위 6개에는 ‘GAFA’로 불리는 정보기술(IT)서비스 기업이 들어갔다. 이렇듯 4차산업 혁명은 세계 경제와 산업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1989년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랭킹을 휩쓸었던 일본 기업은 자취를 감췄다.

일본 정부는 이런 현상을 ‘디지털 패전(敗戰)’으로 규정하고, 디지털청을 설립하는 등 디지털 인재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2019년부터 약 4조원의 예산을 투자해 ‘GIGA 스쿨’이라는 교육 정보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 차원에서 전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에게 전자 교과서가 내장된 태블릿 단말기를 제공하고, 교실에 전자 칠판을 도입해 교육 콘텐트를 제공했다.

그런데 정작 이런 디지털 교구를 활용해야 할 교사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이 낮아 일본 정부는 고심하고 있다. 디지털 교구를 활용해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효과적일지 전례가 없어 일본 교육 당국은 교육 정보화 선진국으로 불리는 북미·유럽 사례를 벤치마킹 중이다.

필자는 일본 광역자치단체 교육청에서 정보화 담당 과장으로 4년간 교육 정보화를 추진해온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에 근거해 일본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지름길은 북미·유럽 등 교육 정보화 선진국보다 교육 제도와 방식, 교육 현장 문제점 등이 가장 비슷한 한국의 교육 정보화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기회 닿는 대로 일본 교육 관계자들에게 한국 사례를 소개해 왔다.

일본에 한국 교육 정보화 선진 사례가 알려지자 이를 벤치마킹하자는 교육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도쿄도 교육청 관계자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학교 현장에서 활용 중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크롬북 기반의 디벗 컴퓨터 단말기 도입 추진 현황을 접했다. 서울 강서구 등현초등학교를 방문해 프로그래밍 교육과 인공지능(AI) 관련 수업을 참관했다.

동행한 도쿄도 교육청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가 장기 계획을 갖고 성공적으로 추진 중인 각종 교육 정보화 사업에 대해 철저한 사전 계획과 추진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교원들과 학생들의 IT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렇듯 한국의 교육 정보화 사례는 다른 나라에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일본을 비롯해 외국은 스마트 교육에 필수인 전자 교과서와 전자 칠판 등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교육 환경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데, 정작 한국은 전자 교과서와 전자 칠판 보급 확산이 요원하다. 예컨대 서울교육청의 교육용 단말기 디벗 예산이 삭감돼 교육 정보화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니 안타깝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다. 한국은 산업혁명 시대에는 뒤처졌지만, 디지털 입국 정책 덕분에 정보화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정보화에 총력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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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종순 일본 오사카부 기술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