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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양쯔충은 유색인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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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질문 1: 최근 배우 양쯔충(양자경·楊紫瓊)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자 미국 CNBC, 영국 BBC 등 서구 주요 언론은 “최초의 아시안이며 두 번째 유색인종 여성(woman of color)”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많은 언론도 그 표현을 그대로 썼다. 하지만 시상식에서 환히 웃고 있는 양쯔충의 얼굴색을 그와 함께 선 ‘백인’ 수상자들과 비교해보자. ‘백인’은 A4용지처럼 하얗고 양쯔충은 ‘유색’인가.

질문 2: 1년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넷플릭스 연애 리얼리티쇼 ‘솔로지옥’에서 남성 출연자들이 한 여성 출연자의 피부를 칭찬하며 “하얗고 순수해 보인다”고 했다가 일부 해외 시청자로부터 “백인 추종” “인종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서구와 접촉이 없었던 수천 년 전부터 화장품으로 백분을 사용하고 미백에 신경 써 온 한국인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K컬처가 세계적 인기를 얻으면서 이런 논란은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보고 대응해야 할까.

‘서양인=백인’은 허구의 프레임
구미에서도 17세기부터 사용돼

BTS 뽀얀 피부, 서양 추종인가
서구 시각에서 온 오해일 수도

번역어 사용이 인종주의 재생산
인류는 연하든 진하든 모두 갈색

오바마는 최초의 미국 흑인 대통령?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양쯔충(왼쪽 둘째)과 다른 수상자들. [AP=연합뉴스]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양쯔충(왼쪽 둘째)과 다른 수상자들. [AP=연합뉴스]

질문 3: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계 부친과 유럽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취임 직전 2008년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과반수인 52%가 오바마를 ‘혼혈인(mixed race)’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만이 과반수인 55%가 ‘흑인’으로 본다고 했다. 반면에 그를 ‘백인’으로 본다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왜일까.

이 모든 질문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인이 서구가 만든 인종 프레임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현실과 관련이 있다. 인종차별은 물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조차 서구적, 특히 미국적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3번 질문부터 생각해보면, 오바마 자신이 미국의 비(非)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치적 포지션을 잡고 스스로 ‘흑인’으로 자처하기도 했지만 그가 미국사회에서 성장하는 동안 ‘백인’으로 취급받지 않은 까닭도 있다. 여기에는 20세기 초의 ‘한 방울 규칙’,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으로 분류”된다는 생각 (박소정 『미백』 2022), 즉 가장 순수한 것이 백색 인종이라는 인종주의가 은근히 스며있다.

이러한 인종주의, 그리고 ‘백인’이라는 말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 청나라에서는 유럽인을 “얼굴이 붉고 털이 많은” 종족(마빈 해리스 『작은 인간』 1989)이라 불렀고 서구인이 자신을 ‘백인’이라 칭한 것도 17~18세기부터이다.

그 직전 시대에 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면 당시 서구인은 자신들을 ‘기독교도,’ 타민족을 ‘이교도’로 분류했고, 아프리카계 장군 오셀로를 ‘무어인’이라고 불렀지, ‘흑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즉 타자화와 구분짓기는 있었지만, 문화와 지역에 기초했지, 인종에 기초하지 않았다.

‘백인 정체성’ 연구의 선구자인 미국 저술가 시어도어 앨런(1919~2005)은 “백인은 발명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유럽인이 비유럽 대륙을 식민지화하고 대륙 간 노예무역을 본격화하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들을 특별한 인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아주 옅은 갈색부터 짙은 갈색까지 스펙트럼을 이루는 인류의 피부색이 갑자기 ‘순수한 백인’과 ‘열등한 유색인종’으로 딱 갈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마치 과학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현대에는 “생물학자들과 유전학자들도 더는 인종이 물리적으로 실재한다고 믿지 않는다”고 미국 역사학자 넬 어빈 페인터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백인’과 ‘유색인종’은 그 단어부터 비과학적이며 인종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영어로 ‘colored people’은 인종차별적 말로 여겨져 방송에서 사용했다가는 큰일 나지만, ‘people of color’는 그렇지 않아서 뉴욕타임스 등 진보적 매체에도 자주 쓰인다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둘 다 ‘유색인종’으로 번역될 뿐인데 대체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이럴 때 요긴한 것이 미국 문서를 많이 학습한 미국산 인공지능이다. 챗GPT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이 나왔다.

“ 'colored people'이라는 용어는 (...) 역사적으로 백인이 아닌 인종적, 민족적 배경의 사람들, 특히 미국의 흑인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인종 차별 및 분리와 연관되어 있다. 반면에 'people of color'라는 용어는 백인이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좀 더 현대적이고 존중이 담긴 표현이다. 이 용어는 흔히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라티노, 아시아계, 미국 원주민, 태평양 제도인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이 용어는 다양한 인종적,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고유한 경험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며 (...)”

이 답을 보면 어떤 맥락의 차이인지는 알겠으나,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생각도 든다. 서구인이 스스로를 ‘유럽계’라 하는 대신 ‘백인’이라는 표현을 자꾸 쓰니 비서구인은 졸지에 착색이 되는 것이다. 물론 변명거리도 있다. ‘white’가 짧아서 쓰기 편하고, 또 아프리카계가 “Black is beautiful.” 등의 슬로건으로 스스로를 ‘흑인’으로 칭하며 검은색을 긍정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니 ‘백인’이란 말도 계속 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과 ‘유색인종’은 기원이 불순하며 비과학적인 것을 과학으로 포장하는 문제가 있다. 심지어 밝은 피부를 서구인의 전유물로 만들어 한국의 전통적인 밝은 피부 선호를 인종차별주의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박소정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BK연구교수의 『미백』에 따르면 방탄소년단(BTS) 등 K팝 아이돌의 뽀얀 피부 사진에 대해 외국 팬들이 “화이트워싱”이며 왜 백인처럼 보이려 하느냐고 비판한 일이 있었다.

그에 대해 한국 팬들은 “하얀 피부가 한국 문화에서 오랫동안 기준으로 존재해 왔고 백인과 상관없다”며 “서구 시각에 입각해 다른 문화에 대한 무지함을 보인다”고 반박했다. 이것은 K팝뿐만 아니라 반사판 등을 동원해 등장인물을 ‘뽀샤시’하게 만드는 K드라마 및 미백 화장품이 발달한 K뷰티를 둘러싸고도 벌어지는 세계적인 논란이다.

무조건적인 밝은 피부 선호가 한국의 전통이라고 해서 비판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그 기원은 햇볕에 그을리며 노동하지 않는 높은 신분에 대한 동경 및 여성은 집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게 좋다는 옛 사고 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또 박 교수의 지적대로 20세기 들어서는 서구인에 대한 선망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유럽계’ ‘아프리카계’ 등 대체어

그러나 그것을 오직 백인 추종으로만 보는 것은 또 다른 “식민주의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라고 박 교수는 말한다. 지금 일부 서구인조차 따라 하고 싶어 하는 K컬처 스타의 외모는 서구가 만든 인종적 분류에 속하지 않는 “혼종의, 또는 무국적성의” 외모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철저한 상업주의의 산물이라는 한계를 가지며, 서구 인종주의를 전복하는 수준도 아니라고 박 교수는 덧붙인다. 그럼에도 기존의 서구 인종 프레임에 미세한 균열은 내고 있다는 것이다.

K컬처가 서구 중심의 인종 프레임에 균열을 내고 있는 이참에 우리부터라도 ‘백인’과 ‘유색인종’이란 표현을 가급적 삼가는 게 맞지 않을까. ‘서양인’ ‘유럽계’와 ‘비서구인’ 등 대체할 말은 많다. ‘흑인’은 ‘아프리카계’가 적당하다. 너무 길다면 ‘남양인’ 등의 신조어를 쓰는 것도 방법이다.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처럼 언어가 사고를 결정짓기까지 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한국계 미국 작가 바이런 킴의 작품 '제유'(1991~현재)  [사진 뉴욕 현대미술관(MoMA)]

한국계 미국 작가 바이런 킴의 작품 '제유'(1991~현재) [사진 뉴욕 현대미술관(MoMA)]

끝으로, 인종주의 색깔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봐야 할 미술작품이 있다. 마침 지금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바이런 킴의 대표작 ‘제유법’(1991~)이다. 미국 국립미술관, 영국 테이트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다. 베이지색, 복숭아색, 밤색 등의 단색 그림들이 마치 화장품 팔레트처럼 모여있는데, 각각의 단색은 작가의 가족, 친구부터 유명 미술가, 낯선 타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피부색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각 인물의 추상화된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눈 같은 흰색과 숯 같은 검은색과 귤 같은 노란색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있는 것은 모두 갈색이다. 옅은 갈색, 진한 갈색, 핑크색 도는 갈색, 주황색 도는 갈색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모두 갈색 계열이면서 다채로운 갈색이라서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 바로 이것이 인류의 초상화다. 인류는 모두 ‘유색인종’이다. ‘백인’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