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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시착’ 유포…양강도서 공개 총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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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통일부가 30일 2017년 이후 북한이탈주민 508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북한 정권의 충격적인 인권 유린 사례를 고스란히 담은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했다. 2016년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통일부는 2018년부터 매년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내용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정부는 그간 탈북민의 개인정보 노출 우려와 북한의 반발 등을 고려해 보고서를 3급 비밀로 분류해 비공개했다. 북한의 대남 핵 위협이 노골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인권 문제를 고리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공개된 보고서에는 탈북민 508명이 증언한 약 1600개의 사례가 담겼다. 총살 등 공개처형, 생체실험, 영아 살해, 고문 및 비인도적 형벌 등 적나라한 인권유린 사례부터 주민들에 대한 일상화된 감시와 표현의 자유 박탈 등 열악한 생활상이 담겼다. 앞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북한 내 인권 침해를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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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서 정부는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인 생명 박탈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살인 같은 강력 범죄뿐 아니라 마약 거래,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 종교·미신행위 등 자유권 규약상 사형이 부과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형이 집행됐다는 증언들이 수집됐다”는 것이다.

특히 2020년 말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반동사상을 유입, 시청,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극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했는데, 실제 탈북민 다수는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한국 물품을 팔았다가 처형된 사례가 있다”고 증언했다.

일례로 2020년 양강도에선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가 대량으로 담긴 USB를 유포한 남성이 공개 총살됐다고 한다. 2019년엔 지인들에게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공유한 사람이 노동교화형 4년에 처해졌다.

탈북민들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 총살은 “대상자를 기둥에 묶은 후 머리, 가슴, 다리 부분에 세 발씩 총 아홉 발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2018년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천 강변에선 기관총을 연사하는 방식으로 공개 처형이 이뤄졌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와 관련, 북한은 2019년 5월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UPR)에서 “사형은 희생자의 유가족 등이 강력하게 요청하면 공개적으로 집행되지만, 매우 드문 경우”라며 공개처형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개처형, 폭력, 성착취, 노동 동원 등에 있어선 “아동이나 청소년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김일성 초상화 손가락질한 임신부, ‘말 반동했다’ 공개처형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북한 여성 인권 실태’ 전시회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태영호 의원실 주최로 열렸다. [연합뉴스]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북한 여성 인권 실태’ 전시회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태영호 의원실 주최로 열렸다. [연합뉴스]

2015년 원산시에서 16~17세 청소년 6명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아편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고 곧바로 총살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김정은 정권에 반하는 듯한 언행을 하는 이른바 ‘말 반동’에 대한 처벌 사례도 다수 수집됐다. 2017년에는 한 여성이 집에서 춤을 추는 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는데, 동작 중 손가락으로 김일성 초상화를 가리키는 모습이 문제가 돼 당시 임신 6개월인 이 여성을 공개 처형했다고 한다.

2018년에는 사적인 자리에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평가를 한 도당 간부가 주변의 신고로 가족과 함께 체포된 뒤 행방불명됐다. 북한은 ‘인민반 제도’와 조직 내 ‘생활총화’를 통해 주민들이 서로 감시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함경남도에서는 노부부가 군인들이 염소를 훔쳐가자 “남한 괴뢰군보다 못한 놈들”이라고 말했다가 이튿날 체포돼 정치범으로 관리소에 수감됐다.

정신병을 앓거나 지적장애인 등 정확히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83호’로 불리는 병원 또는 관리소에서 생체실험이 자행된다는 증언도 나왔다. 보고서는 “북한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존재 자체를 불명예로 인식할 정도로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 당국이 장애인의 결혼과 출산을 제한하고 ‘난쟁이 마을’에 격리시켰다는 진술도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인권보고서

북한인권보고서

탈북 과정에서 붙잡혀 돌아온 강제송환자, 특히 여성에 대한 잔혹한 인권유린 사례도 보고서에 담겼다. 브로커들은 탈북을 시도하는 여성의 열악한 사정을 약점 잡아 강제로 매매혼을 시키거나 빈번하게 성폭력을 가했고, 구금된 뒤 강제 낙태를 당한 경우도 다수 보고됐다. 보고서는 “구금시설에서 여성에 대해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며 여러 명이 보는 가운데 나체 검사를 하고, 여성의 은밀한 부위 내부까지 직접 확인하는 체강 검사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이뤄졌다”고 명시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정치범수용소 수용자에 대한 처형과 강제 노동이 이뤄지고 있고,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은 감시와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보고서는 정부가 북한 인권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실질적인 해법을 찾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최근 북한의 인권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고, 증언이 상반될 경우 이를 모두 반영해 균형 있게 담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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