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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MZ 아닌 젠Z…디지털원주민 20대, 트렌드를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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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LG전자 직원커뮤니티 ‘엠지트’ 소속 문선애·김서연·김수빈·안수민·주소미·김선태·박형윤씨(왼쪽부터)가 신제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고석현 기자

LG전자 직원커뮤니티 ‘엠지트’ 소속 문선애·김서연·김수빈·안수민·주소미·김선태·박형윤씨(왼쪽부터)가 신제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고석현 기자

“조명이 제품 상단에 있으면 실제로 사용할 때 너무 눈부셔요. ‘젠Z’(generation Z, Z세대)들은 간접등처럼 아늑한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조명 위치를 바꿔서 은은한 분위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달 초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33층 라운지 ‘다락’. LG전자 직원 커뮤니티 ‘엠지트’가 테이블형 공기청정기 ‘에어로퍼니처’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해 만들어진 엠지트는 이 회사 생활가전(H&A)사업본부 소속의 젊은 직원이 자발적으로 모인 커뮤니티다. 현재 40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평균 나이는 28.7세다.

직원들은 계급장·나이·이름표를 떼고 닉네임만으로 소통한다. 집중하는 분야는 또래인 20대 ‘젠Z’이다. 닉네임 ‘영자’로 활동하는 박형윤 CX전략팀 선임은 “젠Z를 위한 제품과 마케팅 아이디어를 정말 리얼한 목소리로 전달한다”며 “이 세대 특징 중 하나가 ‘불필요한 눈치를 보지 않는다’인데, 익명으로 활동하니 더 과감하게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젠Z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제품·마케팅 전략도 바꿔놓았다. 이른바 ‘방방컨’이라고 불리는 창문형 에어컨의 경우 “요즘 세대는 바람이 직분사되는 걸 싫어한다”는 의견을 반영해 ‘집중 회전’ 기능을 추가했다. 이들은 젠Z의 가전 사업의 비전으로 ‘가전엄빠’라는 키워드도 만들었는데, 엄마·아빠처럼 밀착 케어해 주는 제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LG전자는 향후 젠Z 대상 제품 마케팅에서 이 키워드를 활용할 예정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로나19 기간 ‘MZ세대 마케팅’에 집중해 왔던 기업들이 바뀌고 있다. 1980~2000년대 초반 출생까지 아우르는 ‘MZ세대’ 꼬리표가 너무 폭넓고, “이미 M세대도 나이가 들었다”는 지적 때문이다. 최근엔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순수 20대 ‘젠Z’에만 타깃을 맞춘다. 주로 소비재 기업에서 ‘젠Z 열공’이 시작된 이유다.

M·Z세대는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세대별 뚜렷한 차이가 있다. M세대는 컴퓨터와 인터넷→스마트폰을 순차적으로 접하며 디지털 문화를 형성해 왔다. 95년 이후 태어난 젠Z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바일·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디지털 네이티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M은 ‘컴퓨터’, Z는 ‘모바일’ 세대다.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며 “실제로 M세대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젠Z’ 특유의 개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젠Z’가 앞으로 조직과 나라를 이끌어갈 인력인 만큼 기업문화의 세대교체 신호탄으로 본다”며 “이들은 직장생활에서도 돈·승진을 좇기보다 자기 성장을 우선시하고, 소통 방식도 직설적인 게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의 ‘꼰대 문화’에도 젠Z는 변화를 주고 있다. “그런데 팀장님, 우리는 회식 안 하나요?” 젊은 세대가 회식을 싫어한다는 건 뭘 모르는 소리다. 건배사나 폭탄주 강요가 없는 회식은 언제든 환영이다.

업무를 대하는 자세도 다소 차이가 있다. M세대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점심은 부서원과 먹고 ▶개인 시간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업무를 중시한다면, 젠Z는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시하는 걸 넘어 직접 실천하며 ▶업무보다는 개인 시간 활용에 가치를 느낀다.

기업들은 M·Z세대를 분리하고, 요즘은 젠Z의 근무·생활·쇼핑 스타일을 이해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마케팅실 산하 ‘퓨처제너레이션랩’이라는 조직을 비롯해, 사업부별로 ‘젠Z랩’(MX사업부), ‘재미보드’(VD사업부), ‘맞장구 크루’(DA사업부) 등을 운영 중이다. 공룡 조직을 젊은 시각으로 바꿔보려는 움직임이다. 젠Z 타깃의 마케팅 방향을 제시하거나 젠Z 트렌드를 ‘교육’하는 게 이들 역할이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조직개편에서 대표이사 직속으로 ‘컬처랩’을 신설했다. 조직문화 혁신을 담당하는 부서인데, 구성원 6명의 평균 나이는 27세다. 모두 ‘젠Z’며 팀장도 없는 수평 조직이다. “그룹을 더 젊게 바꾸겠다”는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조직이라고 한다. 이들은 2~3주에 한 번 대표이사와 만나 ‘젠Z’ 관점에서 기존의 일하는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조만간 업무 보고의 방식과 시간을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다. 20·30대 직원 조직인 ‘행복클랜’이 나서 인사제도와 복지를 재정비했다. 최근엔 이들의 제안에 따라 사내 잡포스팅 제도인 ‘오잡스’, 10년 주기 근속포상 휴가와 연계해 최장 한 달까지 휴가를 갈 수 있는 ‘오리브’ 등이 신설됐다. SK하이닉스는 젊은 사원들의 회의체인 ‘주니어보드’를 운영 중이다. 기아도 주니어급 매니저 20여 명을 모아 ‘영이노베이터’라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이채호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젠Z는 삼성·BTS·블랙핑크 등 한국 제품과 브랜드가 세계 1등을 하는 것에 익숙한 세대”라며 “이들을 만족시키면 전 세계 모든 세대에 파급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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