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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관련자들에 면죄부, 축구협회의 사면 헛발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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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 28일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한 대한축구협회. 스포츠계 안팎에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지난 28일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한 대한축구협회. 스포츠계 안팎에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KFA)가 징계 중인 축구인들을 전격 사면한 이후 축구계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축구협회는 지난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과 우루과이의 평가전에 앞서 이사회를 열고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 처분을 받은 축구인 100명을 사면 조치했다.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축구계 활동이 금지됐던 전·현직 선수와 지도자·심판·행정직 관계자 등이 한꺼번에 구제받았다. 이 중에는 지난 2011년 발생한 프로축구 승부조작 스캔들에 연루돼 영구제명 처분을 받은 48명도 포함돼 있다.

축구협회는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는 한편, 축구계 화합과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징계 기간이 충분치 않은 이와 성폭력 관련자, 승부조작 적극 가담자는 제외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축구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관련 내용을 미리 공지하지 않은 채 온 국민의 관심이 A매치에 쏠린 틈을 타 슬그머니 발표한 점과 사면 대상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KFA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수도권 모 대학축구팀 감독은 “승부조작 기회를 엿보는 자들에게 ‘혹여 들키더라도 10년 정도만 버티면 없던 일이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준 결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축구 K리그 운영 주체인 프로축구연맹도 발끈했다. 연맹은 “K리그 자체 규정에 따라 승부조작 가담자의 영구제명 조치를 유지할 방침”이라면서 “승부조작 범죄자들에게 리그의 문을 열어줄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축구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도 성명을 내고 “축구계 비위 행위자 100인의 사면을 강력하게 반대한다”면서 “전면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축구계 외부의 우려도 깊다. 대한체육회는 “체육회 규정상 산하 종목 관계자의 징계 기록을 삭제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축구협회가 어떤 규정에 근거해 사면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체육회와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은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철저한 조사를 천명했다. 하 의원은 지난 29일 “아주 나쁜 선례가 만들어졌다”면서 “월드컵 16강 진출의 성과를 승부조작 주범들과 나누겠다는 황당한 논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샅샅이 조사해 국민 여러분께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자 축구협회도 한발 물러섰다. 31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어 사면 결정에 문제가 없는지 재검토할 예정이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사면 결정 이후 축구계 안팎에서 쏟아진 여러 목소리를 경청했다”면서 “객관적인 시선에서 다시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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