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긴축, 안 따라갈래"…한국처럼 멈췄다, 각국 금리 '마이웨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의 금리 인상 스텝에 보조를 맞춰온 각국 중앙은행들이 이젠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지난 1년간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뒀지만, 고금리 부담이 커지자 자국 상황에 맞는 통화정책을 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디커플링(탈동조화)’이 확산할지 주목된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베트남은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1%포인트 내렸다. 물가 상승세가 정점을 찍었다고 보고,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택했다. JP모건은 헝가리‧칠레‧체코 등 다수 신흥국이 기준금리를 연내 인하할 것으로 봤다.

한국처럼 금리 인상을 이미 멈춘 국가도 다수다. 브라질은 지난해 9월부터 이번 달까지 다섯 번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캐나다(3월)와 인도네시아(2월), 말레이시아(1월)도 올해 들어 금리 인상을 중단했다. 호주는 다음달 4일 정례 금융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처럼 긴축 '숨고르기'에 나선 국가는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경제 체력이 떨어지는 신흥국이 많다. 고금리 정책으로 소비·지출이 줄고, 고용이 둔화하는 등 전반적으로 경제활력이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신흥국의 경제 성장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2~2018년 평균 4.8%였지만, 올해는 4.0%, 내년엔 4.2%에 그칠 전망이다.

속도 조절은 그간 펼친 정책의 영향을 살피고, 경기 회복에 무게를 두기 위한 정책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벤자민 디오크노 필리핀 재무장관은 오는 5월 금리동결을 시사하면서 “통화정책은 시차를 두고 작동한다”고 했다. 물가 상승 둔화가 확인되거나, 경기 둔화 신호가 뚜렷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긴축 중단이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화정책 ‘각자도생’이 확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가브리엘 스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신흥국연구본부장은 "신흥국은 자국 경제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을 결정할 것"이라며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피벗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흥국들이) 망설이지는 않는다"고 전망했다. 이지현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도 "(고금리로) 지나치게 높아진 통화가치는 수출에 악영향이 있는 등 경제회복에 부정적"이라며 "신흥국은 금리 인하를 통한 경쟁력 회복 유인이 크다"고 최근 보고서에 밝혔다.

특히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이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각국 통화정책 운용의 폭을 넓혀주는 요소로 꼽힌다. 이달 초만 해도 Fed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신호를 보냈지만,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여파로 22일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에 그쳤다. 월가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은 “경기 침체가 몇 달 안에 시작될 것”이라며 Fed의 연내 금리 인하를 점쳤다.

다만 이런 긴축 숨고르기가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통화 가치 하락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 등을 우려해 미국과 디커플링을 지속하는 것이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어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는 인플레이션이 워낙 심각해 대부분 나라가 비슷한 (긴축) 정책을 썼지만, 지금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중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정책이 달라지는 것”이라며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미국과 금리 차가 1.75%포인트 이상 벌어지면 한은도 연내 금리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