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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힘든 中 청년들, 여기로 ‘오픈런’ 한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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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청년들로 북적인 핫플레이스는 어디였을까. 바로 베이징 시내에 있는 티베트 불교 사찰인 융허궁(雍和宫)이다. 중국판 인스타그램으로 알려진 라이프스타일 앱 샤오훙수(小紅書)에는 융허궁 관련 게시물만 11만 개가 넘는다. 청년들은 부자가 되려면 어떤 염주 팔찌를 사야되는 지부터 참배하는 순서나 향 피우는 방법 등을 공유한다.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티베트 불교 사원 융허궁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티베트 불교 사원 융허궁

융허궁뿐만 아니라 항저우의 영은사(靈隱寺), 항저우의 푸퉈산(普陀山)풍경구, 쑤저우의 한산사(寒山寺), 뤄양의 백마사(白馬寺), 시안의 대안탑(大雁塔), 정저우의 소림사(少林寺), 시짱자치구의 포탈라궁(布達拉宮) 등이 인기 검색어로 등극했다.

중국 온라인 여행 기업 씨트립(携程, 글로벌 서비스명: 트립닷컴)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사찰 관련 명승지 입장권 주문 건수가 전년 대비 3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2월부터는 지우링허우(90後)와 링링허우(00後)가 명승지 입장 예약자의 50%를 차지했다.

오전 7시, 항저우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원인 영은사(靈隱寺)에 모인 참배객들. 출처 샤오훙슈 @愿力

오전 7시, 항저우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원인 영은사(靈隱寺)에 모인 참배객들. 출처 샤오훙슈 @愿力

청년들은 왜 사찰을 찾을까?

중국의 시장조사업체 CBN데이터는 "요즘 청년들을 무릎 꿇게 만드는 곳은 융허궁 뿐이고, 2시간 동안 줄을 서 있어도 화를 내지 않는 곳은 융허궁의 불교용품 판매소(法物流通处)뿐"이라고 논하며 사찰을 찾는 청년들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 사찰은 학업, 시험, 연애, 결혼과 같은 인생의 주요 사건부터 수면, 운동, 식사, 사교 등 일상에서 느끼는 청년들의 정신적 피로를 해소하는 안식처로써의 역할을 수행한다. 청년들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기 어려울 때, 전지전능한 신이 있는 공간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빨리 평화를 얻는 법이라 믿는다. 영적인 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두 손 모아 소원을 비는 순간, 마음 속의 수많은 걱정과 불안함이 희망과 기대로 바뀌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사찰이 갖고 있는 특유의 엄숙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 마음을 정화시키는 종소리나 북소리의 리듬은 청년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탈(脫)세속을 느끼게 한다. 사찰을 찾는 청년들은 현생에서 한 걸음 떨어진 공간에서 자신을 고찰했을 때, 삶의 관점도 풍요롭고 다양해진다고 여긴다.

마지막은 사찰이라는 공간이 청년 세대의 선호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찰을 비롯한 명승지가 젊은 세대 관광객들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편의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항저우의 융푸사(永福寺)는 지난해 사찰 내 한쪽에 시베이(慈杯)카페를 열었다. 사찰의 동양적이고 신비한 건축 요소와 커피라는 서양 음료의 조합의 대비가 이색 공간에 대한 관광객의 몰입감을 높였다는 평가다. 이런 장소는 소셜미디어(SNS)에서 인기를 끌며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사찰 내 카페 등 상업 시설이 두루 등장했다. 출처 샤오훙슈 갈무리

사찰 내 카페 등 상업 시설이 두루 등장했다. 출처 샤오훙슈 갈무리

중국불교협회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 말까지 중국 내 3만 개가 넘는 기존 사찰 중 20% 이상이 상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허난성, 쓰촨성 등 불교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 성(省) 및 도시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10월에는 목어(木魚)*라는 앱이 출시돼 중국 앱스토어 2위(무료 기준)에 올랐다. 직접 사찰에 방문할 수 없는 청년 세대는 아이패드로 앱을 켜서 전자 향을 피우고, 불교 경전을 듣는다. 중국 매체 바이두콰이자오(百度快照)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이쯤 되면 서방정토 행복의 나라로 가는 입구가 애플 본사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재치있는 평을 남겼다. 챗GPT도 사찰 열풍에 올라탔다. 일본의 개발자 이에리 카즈마(Kazuma Ieiri)가 제작한 챗GPT API 기반 'HOTOKE AI'에서는 사용자가 고민이나 질문을 남기면 불교 이론과 경전을 바탕으로 청년들에게 '현답'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패드로 앱을 켜서 전자 향을 피우고, 불교 경전을 듣는 중국 청년들

아이패드로 앱을 켜서 전자 향을 피우고, 불교 경전을 듣는 중국 청년들

일본 개발자 이에리 카즈마(Kazuma Ieiri)가 만든 경전 기반 챗봇 '호토케AI'

일본 개발자 이에리 카즈마(Kazuma Ieiri)가 만든 경전 기반 챗봇 '호토케AI'

*물고기 모양으로 나무를 깎고 속을 비워 만든 악기.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소형화된 것을 '방울 탁(鐸)'자를 따와 목탁(木鐸)이라 부른다.

사찰 기념품, 청년 세대 '부적'으로 인기 

사찰에서 판매하는 기념품도 인기다. 헤이룽장성에 거주하는 지우우허우(95後)인 샤오완은 최근 베이징에 사는 친구에게 '융허궁에서 판매하는 염주 팔찌를 대신 구매해줄 것'을 요청했다. 패션 아이템으로도 훌륭하면서 영험한 기운까지 갖고 있다는 입소문에 청년들 사이에서는 염주 팔찌도 인기다. 온라인 상에는 염주 구매대행업도 성행 중이다. 한 남성이 한 달 동안 약 300여 건의 구매를 대신 해준 대가로 1건 당 30위안의 수익을 올린다는 이야기도 중국 언론에 보도된 바있다.

팔찌를 구매하기 위한 인파로 융허사의 불교용품판매점 앞이 북적인다.

팔찌를 구매하기 위한 인파로 융허사의 불교용품판매점 앞이 북적인다.

CBN데이터의 자료에 따르면 오전 8시부터 사찰 내 불교용품 판매소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팔찌(手串)는 오리구이 전문점 취안쥐더(全聚德)와 월병 전문점 다오샹춘(稻香村)과 함께 베이징의 3대 특산품이라 불릴 정도다.향재유리팔찌(香灰琉璃手串)는 향을 피운 뒤 재를 모아 구슬에 넣어 상서로움이 배가된 제품으로 통한다. 제작 수량이 한정적이고, 평일에만 판매하며 온라인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1인 구매 갯수를 제한해 희소성마저 높다. 일종의 헝거 마케팅인 셈.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선 이유다. 미학적으로도 뛰어나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없다. 중국의 유명 연예인 런지아룬(任嘉伦), 딩청신(丁程鑫) 등이 팔찌를 착용한 것도 계기가 됐다.

팔찌의 개당 가격은 200~600위안에 책정돼 있다. 가격대를 두고 네티즌들은 '일반적인 패션 팔찌를 사는 데 500위안을 쓴다고 생각하면 고민이 되겠지만, 행운을 기원하는 팔찌이므로 그만한 가치가 있다', '500위안에 복을 부를 수 있다면 비싼 건 아니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네티즌의 설명에 따르면 파란색은 건강, 녹색은 직장, 흰색은 학업, 금색은 부를 의미한다. 팔찌의 크기, 개수, 패턴에 따라 모두 다른 의미를 갖고 있어 미리 공부해가지 않으면 잘못된 물건을 사기 쉽다는 구매 경험도 줄을 잇는다.

융허사에서 판매 중인 염주 팔찌. 출처 샤오훙슈

융허사에서 판매 중인 염주 팔찌. 출처 샤오훙슈

라이브방송으로 융허궁 팔찌를 구매하는 스트리머들. 출처 CBN데이터

라이브방송으로 융허궁 팔찌를 구매하는 스트리머들. 출처 CBN데이터

청년들이 이 팔찌를 사기 위해 긴 줄을 마다하지 않는 데는 소셜미디어의 영향, 2030세대의 어려운 현실이 반영돼 있다. 샤오훙수에는 융허궁에서 구매한 팔찌를 차고 다닌 후로 '대학원 입학 시험에 붙었다', '혼자 코로나에 안 걸렸다', '취업에 성공했다' 등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설(說)이 가득하다. 개인의 단편적인 메시지가 모여 '융허궁 팔찌의 영험함이 기대 이상'이라는 거대한 서사가 완성된 것. 최근 더욱 거세진 IT 업계 정리해고, 취업난, 고물가 등 청년들이 겪고 있는 실제적 고통의 강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염주 팔찌의 인기도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현실을 타개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형이상학적인 요소에 의지해왔다. 사찰에 방문하고 부적 팔찌를 지니고 다닌다고 해서 실제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청년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여기에 몰두하는 건 그만큼 '위로'가 필요한 중국 청년이 많다는 뜻 아닐까.

임서영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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