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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민주당이 ‘검수완박 시즌 2’를 외치는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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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정권교체 직전 강행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과정에서 보여준 편법과 꼼수는 열거하기도 벅차다. 법사위 통과를 위해 소속 의원을 위장 탈당시키고 10여분 만에 법안을 처리해 ‘90일 숙의 ’원칙을 무시했다. 새로 취임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까 봐 국무회의 시간까지 바꿔 새 정부 출범 하루 전 법을 공포했다. “선을 넘었다”는 지적에도 “이 법이 안 되면 문재인 청와대 20명이 감옥 간다”고 밀어붙였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그제 검수완박법이 “절차상 하자는 있지만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논리가 한두개가 아니다. 헌재는 “여야 동수가 원칙인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사실상 민주 4 대 국민의힘 2 구도가 됐는데도 박광온 법사위원장이 표결을 강행해 통과시킨 건 명백히 국민의힘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그래놓고도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안의 심의·표결에 참여했으니 가결 선포는 문제없다”고 했다. 궤변의 전형이다. 문제가 잘못 출제돼 떨어졌어도 시험을 봤으니 불합격은 타당하다는 것인가. 술 마시고 운전했어도 집에 들어갔으면 무죄란 얘기인가.

“절차 하자 있지만 무효는 아니다”
헌재 결정 업고 입법 폭주 재시동
검 수사의지 꺾으려는 뜻 아닌가

이번 결정에서 검수완박법이 유효하다고 한 재판관 5명은 전부 진보 성향이다. 그중에서도 강성 진보 성향인 이석태 재판관은 다음 달 정년 퇴임한다. 민변 회장 출신인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으로 임명됐다. 헌재가 굳이 그의 퇴임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민감한 결정을 내린 이유가 의문이다.

헌재의 결정도 결정이지만, 민주당의 행태도 꼴불견이다. 갖은 꼼수로 법을 훼손한 사람들이 반성은커녕 민형배 의원을 복당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니 기가 차다. 오죽하면 중도 성향 법관 출신인 김형두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그제 인사청문회에서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 우려스러운 점이 있었다”고 밝혔겠는가.

민주당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탄핵 운운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한 장관이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한 게 탄핵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건 민주당도 잘 알 것이다. ‘한동훈’만 나오면 ‘퇴진’을 복창하는 고질병이 또 도진 모양이다. 정부가 검수완박법에 대응해 검찰 수사권의 범위를 정한 시행령을 폐지하라는 주장도 문제다. 헌재가 검수완박법의 유효성을 확인한 이상 그 법에 근거한 시행령도 유효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민주당의 행태 중 가장 문제는 헌재 결정을 업고 정부가 반대하는 모든 법안을 줄줄이 통과시키려는 행태다. 169석의 의석을 동원해 법안을 밀어붙여도 헌재가 면죄부를 줄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헌재의 검수완박법 결정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입법 절차에 문제가 있으나 국회를 존중해 무효로 하진 않겠지만, 앞으로 이런 졸속 입법은 절대로 안 된다는 뜻으로 본다”고 했다. 동의한다. “이번은 봐주지만 다시는 이런 식으로 입법하지 말라”는 옐로카드를 헌재가 민주당에 던진 것으로 풀이하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문제 법안들을 강행 처리한다면 옐로카드 받은 선수가 반칙을 되풀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두 번째 옐로카드는 레드카드(퇴장)다. 헌재조차도 그 경우엔 면죄부를 주기 어려울 것이다.

헌재의 역사를 보면 단숨에 무 자르듯 확정된 결정은 찾기 어렵다. 간통죄만 해도 1990년부터 28년 동안 4차례나 ‘합헌’ 판정을 받다가 2015년 위헌 결정이 내려져 62년 만에 폐지됐다. 사형제 역시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 합헌 판정을 받았지만 2018년 3번째로 헌재의 도마에 올라 재판이 진행 중이다. 행정부와 관련된 중대 사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탄핵 소추의 경우 노무현 탄핵은 기각했다가 박근혜 탄핵은 인용했다. 앞의 기각이 뒤의 인용 때 헌재에 나름대로 쿠션 역할을 했을 것이다.

민주당도 정부가 반대하는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검수완박 시즌 2’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서초동과 여의도를 오가는 소식통의 전언에서 답을 짐작해볼 수 있다.

“검찰은 1년 전 민주당이 작심하고 법을 만들면 검찰청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는 현실을 경험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그런 공포는 더욱 커졌다. 검찰 조직에 동요가 있을 수 있다. 민주당은 이걸 노리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노웅래 의원 등 동료들이 줄줄이 기소되는 상황에서 ‘검수완박 시즌 2’를 거론하면, 그 자체로 검찰을 흔들 수 있다고 보는 거다. 그래서 자신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 칼날을 무디게 만들려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