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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훈의 음식과 약

왜 봄이면 졸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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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봄이다. 피곤하고 졸리다. 전에는 이렇게 봄에 졸리는 현상이 영양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요즘에는 사시사철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영양이 부족한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매일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를 챙겨 먹는 사람도 봄이면 졸리다. 왜 그런 걸까.

추측할 수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사람은 봄철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 증상으로 낮에 피곤하고 졸릴 수 있다. 그런 경우는 알레르기 비염을 잘 관리해줘야 봄철 피로를 이겨낼 수 있다. 기온과 낮의 길이가 계절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란 설명도 있다.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빛의 강도가 세지면 뇌가 그걸 감지한다. 이에 따라 세로토닌·코티솔·멜라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분비량이 달라진다. 이들 물질 간의 밸런스가 달라지면 우리가 느끼는 기분과 활력에도 차이가 생긴다. 반드시 졸리기만 한 건 아니다.

춘곤증을 물리치는 데는 운동이 좋다. [사진 인천시]

춘곤증을 물리치는 데는 운동이 좋다. [사진 인천시]

사실 춘곤증이란 말은 봄의 한쪽 얼굴만 보여줄 뿐이다. 일조량이 줄어들고 해가 일찍 지는 겨울에 우울하던 사람에게 봄은 구원의 계절이다. 봄바람이 불면 마음도 함께 들뜬다. 얼굴은 빨개지고 심장 박동은 빨라지며 머릿속은 이런저런 상상으로 가득해진다. 영어권에서 ‘봄의 열병(spring fever)’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그저 봄이라 피곤한 게 아니라 봄이라 기분 좋게 더 많은 활동을 하고 나서 피곤한 것일 수도 있는 셈이다.

춘곤증도 봄의 열병도 정식 의학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실체 없는 상상은 아니라는 게 최근 과학자들의 견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는 다른 동물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므로 사람에도 나타난다고 봐야 맞다. 실제로 벨기에 연구팀이 2016년 발표한 연구결과 참가자의 작업기억은 연중 봄철에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기억이란 순간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운전하면서 전화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작업기억이 떨어지는 봄날 운전대를 잡고 전화하는 것은 특히 더 위험하단 얘기다.

낮이 길어지고 날이 따뜻해질 때 변화에 더 빨리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햇볕을 쬐는 게 좋다. 뇌가 낮과 밤의 길이에 맞춰 인체의 리듬을 맞추는 일을 더 잘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 건강에도 유익하다. 2004년 미국 연구결과 야외활동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분과 인지능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도 주로 봄에만 해당한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야외활동을 해도 기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훨씬 적게 나타났다. 춘곤증이나 영양결핍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건 운동 부족이다. 진정한 봄의 활력을 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활동량을 늘리자. 봄은 짧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