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반도체 기업들, 미·중 사이서 심각한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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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시행 이후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미 반도체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으려는 반도체 기업들은 ‘워싱턴의 도움을 받느냐, 아니면 중국에서의 확장 능력을 보존할 것이냐’라는 어려운 결정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 21일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상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 규정을 통해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들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대상 국가에서 첨단 반도체 공장의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WSJ는 “이 같은 제약은 이미 중국에서 상당한 규모의 사업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 동아시아 반도체 업체들에 심각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민은 반도체 주요 기술·장비가 사실상 미국에 종속된 상황에서 주요 생산공장은 상당 부분 중국에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 물량 가운데 중국 비중은 40%를 상회한다. K-반도체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고래 싸움에 끼인 형국이다.

지난 27일엔 미 상무부가 반도체 지원금 신청 기업에 수익성 지표뿐 아니라 영업 기밀일 수도 있는 수율까지 요구하며 이를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하도록 했다. 보조금을 고리로 사실상 국내 반도체 기업을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29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 후 미국 반도체 보조금 신청 계획을 묻는 기자들 질의에 “엑셀도 요구하고, 신청서가 너무 힘들다”면서 “많이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이어 기밀사항 제출에 따른 기술 유출 우려에 대해선 “(SK하이닉스의 미국 사업은) 패키징이어서 전체 수율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 실제로 그 안에 (전 공정) 공장을 지어야 하는 입장보다는 (부담이) 약간 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부회장은 주총에서도 미·중 반도체 패권 갈등이 촉발한 지정학 리스크에 대해 “한 회사가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각국 정부와 고객 니즈에 반하지 않으면서 최적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매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측은 “한국과 미국의 관련 정부 기관들과 긴밀히 논의 중”이라며 “구체적인 보조금 지원 내용을 검토한 뒤 향후 조치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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