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오른손 투수 트레버 윌리엄스가 19일 마이애미 원정경기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오른쪽 시계가 피치 클락. AP=연합뉴스
6-6 동점 상황에서 맞이한 9회말 2사 만루. 투수와 타자가 ‘벼랑 끝’ 3볼-2스트라이크 풀카운트 싸움을 벌인다. 공 하나로 승패가 갈리는 상황. 그런데 투수가 공을 채 던지기도 전에 경기가 종료된다. 심판이 돌연 ‘스트라이크’ 삼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말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장면은 지난달 26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시범경기에서 나왔다. 존 립카 주심은 애틀랜타 타자 칼 콘리가 빨리 타격 준비를 하지 않았다며 두 팔을 들어 삼진을 외쳤다. 보스턴 투수 로버트 크윗코스키가 공을 던지기도 전이었다. 삼진 콜을 들은 콘리는 헛웃음으로 황당한 마음을 대신 표현했다.
논란이 된 이 사건은 ‘피치 클락(Pitch Clock)’이라는 이름의 규정에서 비롯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오래 전부터 도입하려고 했던 제도로 투수와 타자 모두 빠른 템포로 경기를 진행해야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먼저 투수는 주자가 없는 상황에선 포수에게 공을 받은 뒤 15초 안으로 투구를 해야 한다. 주자가 있을 때는 20초 규정이 적용된다. 이를 어기면 볼 하나가 선언된다. 또, 투수 견제도 주자당 2회로 제한된다. 만약 3번째 견제에서 주자를 잡지 못하면 보크가 주어져 주자가 다음 베이스로 진루한다.
타자에게도 비슷한 규정이 적용된다. 피치 클락이 작동하고 8초가 남기 전까지 타격 채비를 마쳐야 한다. 규정을 위반하면 스트라이크 하나가 추가된다. 타임을 부를 수 있는 기회도 타석당 한 번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피치 클락을 시행한 이유는 하나다. 바로 경기시간 단축을 통한 인기 회복이다. 메이저리그의 지난해 정규시즌 평균 경기시간은 3시간6분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2시간40분 정도면 게임이 끝났지만, 잦아진 투수 교체와 비디오판독 도입 등의 이유로 경기시간이 3시간대를 넘어섰다.
경기시간 단축은 야구의 인기 회복과 궤를 같이 한다. 지금 메이저리그는 관중이 계속 줄고 있고, 시청률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형국이다. 뉴욕포스트는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은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해도 총관중은 2015년 이후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또, 지난해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6차전은 황금시간대임에도 역대 최소인 1250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했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인기 회복 돌파구를 경기시간 단축에서 찾고 있다. 빠른 템포를 좋아하는 젊은 팬들을 잡으려면 경기시간이 지금보다 많이 줄어들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피치 클락 도입을 수년 전부터 주장했고,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에서의 시범 운영을 거쳐 올해 메이저리그 도입을 결정했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팬들은 더 빠른 속도의 경기를 원한다. 피치 클락은 마이너리그에서 수년간 철저히 다듬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LA 다저스와 밀워키의 시범경기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피치 클락. AP=연합뉴스
피치 클락의 효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의 평균 경기시간은 3시간1분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2시간30분대로 전년 대비 20분이 넘게 줄어들었다. 실제로 2시간30분도 되지 않아 끝나는 게임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처럼 장점이 많아 보이는 피치 클락. 그러나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선수들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투수가 공을 던지기에는 15초가 너무 짧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또, 타자에게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는 중이다.
시범경기에서 일어난 황당한 사례도 선수들의 목소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9회말 2사 만루 삼진을 비롯해 피치 클락이 야구 자체를 바꿔놓는 경우가 계속 생기면서 선수들의 요구가 거세졌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이러한 의견을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 전달했고, 노사협의체 성격의 경쟁위원회가 최근 피치 클락 원안을 재검토하며 여지를 조금은 남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