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펜션 등을 예약할 때 3만원을 할인받을 수 있는 숙박쿠폰이 나온다. KTX·SRT 등 국내 여행 교통수단의 할인 폭을 대폭 늘리고, 소상공인 등에게는 10만원의 국내 여행비까지 지급한다. 정부가 이런 내수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건 경상수지 흑자를 지키기 위해서로 풀이된다. 최근 수출 부진에, 해외여행까지 늘며 올해 경상수지 적자 폭이 역대 최악으로 치달아서다.
숙박·열차 등 할인, 19만명엔 휴가비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내수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가 종합적으로 마련한 대책은 국내 여행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국인에 대해서는 해외로 나가는 대신 국내 여행을 할 유인을 만들어주고, 외국인에 대해서는 입국 제한을 완화해 국내 관광을 활성화하는 식이다.
4~5월 중 100만명을 대상으로 3만원 할인받아 숙박 예약을 할 수 있는 쿠폰을 지원한다. 야놀자·여기어때와 같은 숙박 플랫폼에서 쿠폰을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KTX는 5월 4인 동반 다자녀가구 할인을 30%에서 50%로 확대하고, SRT는 4월 중 예약상황에 따라 최대 30%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중소·중견기업 근로자와 소상공인 등 19만명에 국내여행비 10만원을 지원한다. 당초 9만명만 대상으로 하는 국내 여행비 지원 규모를 2배가량 늘렸다. 에버랜드·롯데월드 같은 놀이시설 예약 때 쓸 수 있는 1만원 할인쿠폰을 제공하고, 지방공항에 도착하는 항공권은 최대 2만원을 할인해준다. 숙박·철도·유원시설·항공 등 여행·휴가비 지원에 총 6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여행이 소비와 직결되는 만큼 해외로 향하는 여행객의 발걸음을 국내로 돌린다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게 정부 계산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한국인이 해외에서 쓴 여행지출이 23억8000만 달러로, 외국인으로부터 거둬들인 여행수입(9억 달러)의 2.6배나 됐다.
놀이공원 입장권도 업무추진비 인정
세제혜택도 있다. 4월부터 연말까지 문화비와 전통시장 지출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한시적으로 10%포인트 상향한다. 기업의 문화 업무추진비 인정 항목에 유원시설·케이블카·수목원 입장권 등을 추가한다. 공연·전시 등 제한적으로 업무추진비로 인정하던 것에서 유원시설 등을 추가하면서 정부는 기업이 직원들에 복지 지원을 늘릴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온누리상품권 개인 구매 한도를 상향하고 주요 농축수산물에 대해선 4~6월 170억원 규모 할인을 지원한다.
비자 완화로 외국인 관광객 늘린다
이번 대책의 다른 한 축은 외국인 관광 확대다. 관광객 1000만명 유치를 목표로 외국인의 입국을 제약하는 비자 제도를 개선한다. 입국자 수가 많고 입국 거부율은 낮은 일본·대만·홍콩·미국·캐나다 등 22개국을 대상으로 전자여행허가제(K-ETA)를 내년까지 한시 면제한다. K-ETA는 2021년 도입됐는데 기존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던 나라에서도 출발 전에 개인정보 등을 꼭 입력하도록 했다. 1인당 1만원의 수수료가 부과되는 데다 영어 외 외국어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입국 장벽’이라는 지적이 일자 한시 면제에 나섰다.
코로나19 확산 때인 2020년 중단한 무비자 환승 입국제도는 복원한다. 정부는 K-팝·K-푸드·K-의료·K-쇼핑·K-뷰티 등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로 했다. 3만~5만명 규모의 콘서트를 4월부터 6월까지 개최하고, 뮤직비디오·드라마 촬영지 등을 관광지로 개발한다. 먹거리 축제와 맞춤형 의료관광 패키지 등을 마련하고, 해외 현지 매체를 통한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결국 더 많은 외국인을 한국으로 끌어들여 돈을 쓰게 하겠다는 목적이다. 지난 1월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관광객은 43만4429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월(110만4803명)의 39% 수준에 불과하다.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국내 관광 회복이 더디다. 그러다 보니 1월 여행수지 적자는 14억9000만 달러로, 1년 전(5억5000만 달러 적자)의 3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같은 달 경상수지 적자 규모(45억2000만 달러)가 198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한 원인 중 하나다.
경영계는 “시의적절한 대책”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위축된 소비심리를 회복하고, 어려움이 지속하는 국내 관광산업과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는 등 내수 촉진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근무 대한상공회의소 유통물류진흥원장은 “이번 대책이 단발성 행사나 이벤트로 그치지 않도록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힘을 모아 국내 경제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