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리창 中 총리는 ‘전시 경제 체제’의 사령관?

중앙일보

입력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시진핑(習近平)의 경제 아바타다.’ ‘부총리를 거치지 않은 첫 총리’… 중국의 새 총리 리창(李强)을 두고 나오는 얘기들이다. 우리 언론도 ‘시진핑 심복’이라는 지극히 정치 공학적 시각으로 접근하려 한다.

과연 그럴까.

전적으로 ‘틀렸다’라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본 중국 관리들의 승진 절차는 까다롭다. 철저한 능력 검증과 실적 평가는 기본이고, 주변 평판도 중요한 요소다. 위로 갈수록 엄밀하다. 시진핑의 후광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리창만의 일은 아니다. 성(省)급 리더에 이르려면 ‘정치’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저장(浙江)-장쑤(江蘇)-상하이의 당서기를 거친 인물이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 ‘시진핑 빽’으로만 성장 가능했겠는가. 리창이라는 인물의 행정 능력을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리창 경제’를 이해할 수 있고, 중국 경제의 미래를 분석할 수 있다.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13일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차 회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신화통신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13일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차 회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신화통신

올해는 리창 총리의 국정 수행 원년이다. ‘리창 경제’는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지 살펴보자.

올 중국 경제의 핵심 키워드 셋

중국의 한 해 경제는 총리가 양회(兩會)에서 발표하는 ‘정부 업무 보고’로 가늠할 수 있다. 길다. 매년 그 내용이 그 내용 같다. 내수확대는 언제나 단골이고, 경제 혁신은 매번 하는 소리다. 그러나 보고를 여러 해 읽어본 전문가라면 무엇을 봐야 할지 금방 눈에 들어온다. 올해 3가지 키워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산업 공급망 보완 및 강화다(强链补链).

보고는 “지속해서 산업 공급망을 보강하는 행동을 전개하겠다(持续开展产业强链补链行动)”고 강조했다. 제조업 서플라이 체인을 다시 점검하고, 우수 자원을 핵심 기술개발에 투입해 공급망의 빈틈을 채우겠다고 밝히고 있다. 에너지, 자원의 국내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지금 미국과 무역,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핵심은 공급망이다. 미국은 '기어코 핵심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쫓아내겠다'고 벼른다. 그 전쟁의 가장 뜨거운 전장이 바로 반도체 산업이다.

미국의 어떤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산업별 독자 서플라이 체인 구축에 나서겠다는 게 강련보련(强链补链)이 갖는 의미다. 리창 총리의 원년은 그 시발점이다.

둘째 발전과 안전의 병행이다(发展和安全并举).

보고는 “산업정책은 발전과 안전이 병행돼야 한다(产业政策要发展和安全并举)”라고 강조하고 있다. 산업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 안전을 먼저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역시 미·중 무역/기술 패권 전쟁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중국은 2021년 말 ‘중국희토류그룹(中國稀土集團有限公司)’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중국알루미늄, 중국우쾅(五鑛), 간저우(赣州)희토류 등 자원개발 업체의 희토류 부분을 떼 만들었다. 여기에 2개의 연구개발형 기업이 참여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중국희토류그룹이 중앙 국유기업을 관리하는 국무원 기관인 국유자산감독관리위 산하에 설립됐다는 점이다. 국가가 직접 희토류 생산 및 공급망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희토류의 무기화’다. 중국 핵심 산업에서는 제2, 제3의 ‘중국희토류그룹’이 탄생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셋째 신형거국체제(新型举国体制)다.

보고는 “신형거국제제를 완비해 핵심 기술 개발에서 정부의 조직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기업, 연구기관 등을 잇는 거국 혁신 기술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보고는 “혁신 기술 개발에서 기업의 주체적 지위를 지원하고, 그에 따르는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라고도 했다.

이런 식이다. 중국이 개발한 민항기 C919가 상용화 비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보잉이나 에어버스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민항기 일부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C919 개발 프로젝트는 그동안 중국샹폐이(中國商飛)라는 회사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이젠 정부가 나선다. 민항기 개발과 관련된 200여개 기업과 직원 20만 명, 110개 연구소와 수 만 명의 연구인력을 묶는 거대한 민관 항공 개발 네트워크를 소리소문없이 구축하고 있다. 보고는 “핵심 기술 개발에서의 정부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기업 활동을 위한 시장 효율을 중시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계획 역량과 시장의 효율성을 모두 잡자는 취지다(有爲政府, 效率市場).

리창 원년은 ‘전시 경제 체제’의 초입?

이들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기술 자립 강화를 위한 산업 업그레이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전면에 나설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의 경제 전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이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바로 리창 총리다.

리 총리는 지난 23일 총리 선임 직후 첫 지방 방문지로 후난(湖南)성 창사(長沙)를 선택했다. 후난의 한 합금공장에 도착한 그의 일성은 ‘산업 업그레이드였다.

“제조업은 중국 경제의 근본 토대(根基)다. 혁신의 주체는 기업이다. 더욱 많은 자원이 선진 제조업 분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건 정부의 역할이다. 그게 바로 산업의 고품질 발전이다.”

리창은 ‘정부의 계획과 시장의 효율’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국가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을 예고한 발언이다.

산업 구조조정에 관한 한 리창은 성공의 기억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저장, 장쑤, 상하이 등을 이끌며 일관되게 추진한 정책이 산업 고도화였다.

리창이 저장성을 이끌던 2012~2016년, 전통적인 제조업 성(省)이었던 저장성은 중국 인터넷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부각된다.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항저우(杭州)는 모바일 혁명의 성지가 됐다. 장쑤에서도 그랬다(2016~2017년). 그는 아예 장쑤 주요 도시의 시내에 있던 임가공 공장에 대해 폐쇄 명령을 내리는 등 구조조정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리창은 업무 추진력에 있어 전임 리커창(李克强) 총리와는 다르다. 리커창 총리가 시진핑 주석에 눌려 있는 듯 없는 듯했지만, 리창 총리는 시 주석의 강력한 지원을 업고 업무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하이 당서기(2018~2022)시절 이뤄낸 테슬라 유치다. 중국에서는 외국기업이 지분 100% 단독 자동차 회사를 설립할 수 없다. 법 조항을 고치고 테슬라를 상하이로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리창이다. ‘시진핑의 빽’에서 ‘빽’은 ‘강력한 지원’으로 해석되는 게 옳다.

리창은 상하이, 장쑤, 저장에서의 성공 경험을 전국으로 확대하려 벼른다. ‘시진핑의 꼬붕’이라는 인식으로는 중국 경제의 내일을 볼 수 없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