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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중국 랭킹1위 리쉬안하오, AI 치팅인가 대기만성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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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리쉬안하오

리쉬안하오

리쉬안하오(李軒豪) 9단이 드디어 커제(柯洁) 9단을 제치고 중국랭킹 1위에 올랐다. 3월 랭킹 점수는 리쉬안하오가 2714점. 커제는 2709점. 5점 차이다. AI 치팅 의혹에 휘말렸던 리쉬안하오는 과연 언제까지 1위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커제는 18세 때인 2015년 첫 1위를 기록했고 그 뒤 2018년 1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51개월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리쉬안하오는 지난해 1월 16위로 시작해 9월에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몇  달 간 커제를 바로 뒤에서 쫓더니 기어이 이번 3월에 랭킹 1위 자리를 빼앗았다.

커제는 1997년생으로 26세. 리쉬안하오는 1995년생으로 28세. 승부 세계는 뒤쫓는 어린 기사가 선배를 따라잡는다. 소위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특이하게도 앞 물결이 뒤 물결을 밀어냈다. 처음 보는 이상 현상이다.

리쉬안하오는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더 많은 의심을 받았다. 전성기를 지난 그의 상승세가 갑작스럽고 놀라웠을 뿐 아니라 AI와의 일치율이 상상을 절할 만큼 높아 ‘치팅’ 의혹에 휘말렸던 것이다.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양딩신이 출전정지 6개월이란 징계를 받았고 그로부터 소란은 물밑으로 가라앉았으나 많은 고수들은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보도에 따르면 리쉬안하오는 2년 전만 해도 7단에 불과했다. 세계 챔피언은커녕 중국내 기전에서도 우승컵을 따내지 못했다. 나이도 적지 않아 그렇게 사라지나 싶었다. 한데 지난해 4월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처음 중국대표팀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4월 말 란커배에서 판팅위를 꺾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대기만성이다. AI와의 기막힌 궁합으로 인생역전을 이뤄냈다.

지난해 11월 세계대회인 춘란배 준결승에서 리쉬안하오는 신진서 9단을 격파하고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결승에 올랐다. 신진서 때문에 우울하던 중국 팬들은 환호했다.

한데 바로 이 대국이 중국기사들의 치팅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국을 온라인 중계한 김진휘 6단은 “AI 일치율이 85%, 이 세상 바둑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AI 일치율이 70%를 넘으면 최상급인데 리쉬안하오는 일치율 85%를 넘기며 최고의 명국을 두었다. 하지만 그는 박수를 받는 대신 의혹에 휩싸였다.

그날 밤 중국의 양딩신 9단은 “리쉬안하오는 홍황류에 나오는 성인급. 나와는 몇십단 차이가 난다. 부끄럽다”며 20번기 대결을 신청했다. 진다면 은퇴하겠다며 선언했다. 리쉬안하오의 실력은 까마득히 높지만 그건 가짜라는 얘기였다. 이런 의혹에 커제와 렌샤오, 천야오예도 동조했다.

리쉬안하오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죄가 없다면 참으로 억울했을 것이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리쉬안하오는 최근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AI로 인해)바둑을 다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공부방법은 AI와의 대량 대국이다. 다른 기사들은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대국하고 AI에게 복기를 의뢰하는 식이지만 리쉬안하오는 AI와의 끝없는 직접 대국을 통해 AI의 정수에 다가선다. 인터뷰는 이렇게 끝난다.

“전통적인 훈련방식에서 별 재능을 보여주지 못한 리쉬안하오가 소년 천재가 쏟아지는 중국바둑계에서 27세가 돼서야 첫 우승을 맛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공지능 번성시대에 맞춰 그의 학습능력이 빛을 발한 게 행운이다.”

이리하여 신진서의 ‘신공지능’처럼 리쉬안하오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헌공지능’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리쉬안하오의 앞길은 아직 험난해 보인다. 무엇보다 춘란배 결승과 아시안게임에서 실력을 증명하여 치팅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그가 중국 1위 자리에서 1년만 버텨내도 ‘AI를 통한 대기만성’은 증명될 것이고 그는 비로소 AI 시대의 진정한 강자로 거듭날 것이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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