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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소설 도입부 쓰는데 3초…주문 안 한 복선까지 뚝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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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챗GPT가 소설도 쓴다. 인간 작가들이 챗GPT와 협업한 SF 소설집 『매니페스토』(네오픽션)가 최근 출간됐다. 인간 작가들은 한결 같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예술적 영감도 인공지능의 영역이 되는 걸까. 중앙포토

챗GPT가 소설도 쓴다. 인간 작가들이 챗GPT와 협업한 SF 소설집 『매니페스토』(네오픽션)가 최근 출간됐다. 인간 작가들은 한결 같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예술적 영감도 인공지능의 영역이 되는 걸까. 중앙포토

"문을 열어 들어선 다음 그가 본 것은 황량한 고요와 아름다움이었다. 흰 구름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유영하고 있었다. 예쁜 도시였지만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를 주인공이 탐험하는 장면을 묘사해달라'는 주문에 챗GPT가 3초 만에 내놓은 도입부다. 챗GPT는 간단한 아이디어만 던져주면 세밀한 묘사를 추가해 소설의 분량을 엿가락처럼 늘려냈다. 비극적인 결말의 복선을 만들고 소설 속 디스토피아의 배경을 만들어내는 작업까지 척척 해냈다. 곳곳에서 인간 작가의 수고를 덜어주는 능력을 확실하게 선보였다. 국내 최초로 챗GPT와 인간 작가가 협업해 쓴 SF 소설집 『매니페스토』(네오픽션) 이야기다. 27일 온라인 서점 YES24에서 전자책이 먼저 출간(종이책은 다음달 3일 출간)된 『매니페스토』는 7명의 인간이 챗GPT와 함께 쓴 SF 단편 7편 모음집이다. 인간과 외계인이 지구에서 공존하며 사는 시대가 배경인 동명의 단편에서 책 제목을 따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이디어만 던져주면 소설체 도입부 뚝딱 

작가들은 협업 후기에서 챗GPT의 활약을 솔직하게 전했다. 완벽한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 주진 않지만 시놉시스 형태의 얼개를 제공하면 세밀한 묘사나 구체적인 배경 설정을 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했다. 가령 '인기척 없는 거리에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났다'는 간단한 상황을 주고 묘사하라고 하자 "나는 인기척 없는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거리는 쓸쓸하고 조용했다. 그때 갑자기 거리 끝에서 나타난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에 내 시선이 닿았다. 사람들이 보면 반드시 눈길을 끌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는 문장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매니페스토

매니페스토

프로젝트를 총괄한 윤여경 작가는 구상 단계에서부터 챗GPT의 도움을 받았다. 챗GPT에 "소설이 잘 팔리려면 어떤 주제를 다뤄야 하는지" 묻자 "어두운 디스토피아 소설과 강한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소설, 스릴러와 로맨스가 인기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윤 작가는 챗GPT의 조언을 따라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어두운 디스토피아 스릴러'인 단편 '감정의 온도'를 썼다. 인간의 뇌에 연결된 인공지능이 유저의 감정과 무의식까지 읽어내는 섬뜩한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를 서술하는 대목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에 연결되면 뇌의 특정 부분이 과도하게 자극을 받아 불안발작, 공포, 감각기능 과부하 등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챗GPT의 답변을 참고했다고 한다.

'공포스럽게 묘사' 주문에 악몽 복선 만들어 

챗GPT는 인간 작가가 주문하지도 않은 복선을 알아서 만들어주기도 했다. '증오의 대상이 죽길 바라는 주인공의 마음을 인공지능 스피커가 읽어내는 상황을 공포스럽게 묘사하라'는 주문에 챗GPT는 "서영은 그날 밤 창밖으로 시체가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그녀의 눈앞에 또다시 그 사람의 사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녀의 방 안에 그것이 떨어졌다"는 문장을 뚝딱 만들어냈다. '주인공이 악몽에 시달린다'는 구체적인 명령 없이도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윤 작가는 "서영의 악몽은 문학적으로 보면 비극을 암시하는 복선 에피소드"라며 "챗GPT가 복선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놀랐다"고 했다.

인간 작가 나플갱어가 쓴 단편 '희망 위에 지어진 것들'은 기후변화로 바다에 잠긴 인천 송도가 배경인 단편이다. 나플갱어는 기후위기에 관한 SF 단편을 쓰겠다는 아이디어만 가진 상태에서 명령어를 입력했다. 그는 '지구에 가장 위협적인 기후 위기가 무엇일까', '이런 상황이 방치될 경우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를 챗GPT에 물어보며 브레인스토밍을 거쳤다. '해수면 상승으로 2043년 인천 송도는 물에 잠겼다'는 단편의 설정은 '기후변화가 닥친 미래 사회의 모습을 3가지 시나리오로 그려달라', '해수면이 상승한다면 한국에서 침수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어디일까', '서해안에서 가장 심각한 위험에 처할 도시는 어디일까'라는 연쇄 질문을 통해 챗GPT에서 얻은 답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그는 "소설의 중심 아이디어와 배경 모두 챗GPT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며 "챗GPT가 없었다면 아예 세상으로 나오지 못했을 이야기"라고 했다.

챗GPT는 인간의 대화를 그럴듯하게 문장으로 풀어내는 작업에도 능했다. 전윤호 작가의 '오로라'는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이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미래를 그렸다. 챗GPT는, 동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오로라를 대중에게 공개하려는 과학자의 대사를 이렇게 만들어냈다.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우리만 알고 있을 수는 없어요. 깨끗하고 무한한 에너지, 암 치료제, 탄소 흡수 건축 자재 등 가능성을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이제 우주의 신비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얻었어요. 공유하지 않기에는 너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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