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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사법부 샅바싸움…민주 ‘대법원장 임명권 박탈법’ 발의

중앙일보

입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자리해 있다. 뉴스1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자리해 있다. 뉴스1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효력을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지난 23일 결정을 둘러싸고 여야 간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대법원장 임명 절차를 바꾸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소속 의원 44명 명의(대표발의자 최기상 의원)로 발의했다. 사법부 구성을 둘러싼 여야의 샅바 싸움이 헌재 결정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이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헌법재판소가 다수당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정치재판을 자행했다”며 “‘과정은 잘못되었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라는 헌재 결정은 ‘도둑질을 했어도 장물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는 판결과 다름없다”고 날을 세웠다. 정점식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결정을 헌재가 내렸다”며 “거대 야당의 법률 자문기구로 전락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민의힘은 23일 “문재인 정권은 마구 위헌 법률을 만들어 내더라도,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나지 않도록 무리하게 자기 사람들을 재판관에 다 넣었다. 그런 의도가 일부 성공한 것”(주호영 원내대표)이라는 비판 이후로 엿새째 헌재의 편향성을 성토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전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절차의 흠결을 인정하고도 유효하다는 결론에 대해 많은 법률가나 국민이 동의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저도 공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헌재를 거의 인신모욕 수준으로 공격하는 반(反)법치적인 행태”라며 여권을 직격했다.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장관이) 사실상 (헌재 결정) 불복을 선언했다”며 “정의와 법을 무시하고 입만 살아있는 법 기술자의 사회를 만드는 표본이 되는 것이 아닌지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 연합뉴스

이러한 공방 속에 민주당은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최기상 민주당 의원이 전날 대표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에는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할 때 ‘대법원장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 새로 담겼다.

법안에 따르면, 대법원장후보추천위원회는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대법관이 아닌 법관(1명) ▶법관 외 법원공무원(1명)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비법조인(여성 2명 포함 5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되며, 의결 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구하도록 했다.

최 의원은 법안에 대해 “현 대법원장 임기가 9월이면 만료된다. 현 제도에서는 대법원장 임명이 소모적인 정쟁의 소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회의 동의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할 경우 사법부 공백이 발생할 점도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안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 법안에 대해 “대통령 임명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시도”라고 반발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다수당의 힘으로 또 입법 폭주를 자행하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숨은 음모가 보인다”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추천위원 11명 중 7명을 대법원장이 고르게 돼 있다”며 “민주당이 대법원장추천위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사람이 아닌 사람을 대법원장 후보로 올리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여권에선 민주당의 법안이 헌법재판관 ‘진보 우위’ 구도를 유지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해석도  나온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을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9명 전원이 교체되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법원장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재 재판관은 계속 진보 성향이 임명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민주당이 의석 우위를 바탕으로 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 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사법부를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여야가 사사건건 충돌만 반복하면서, 검수완박법 같은 정치적 사안이 헌법재판소나 법원으로 넘어가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보수·진보를 갈라놓고 재판관 1명을 캐스팅 보트처럼 활용하는 현 상황은 정치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여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사법부 구성 방식을 부분적으로만 바꿀 게 아니라, 설득력 있는 대안을 놓고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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