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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영(令) 안 서나…"전광훈 천하통일" 김재원에 늦은 경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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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김재원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김재원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5·18 관련 발언 등 잇단 실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공개 경고했다.

김 대표는 28일 오후 페이스북에 “혹시 민심에 어긋나는 발언이나 행동이 아닌지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았다면 더더욱 신중해야 마땅하다”고 적었다. 이어 “우리 당은 이제 겨우 체제를 정상 상태로 재정비하고 새 출발을 하는 단계에 놓여 있다”며 “여당이라지만 소수당이니 만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매사에 자중자애해야 한다”고 했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김 최고위원을 겨냥했다고 김 대표 측은 전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25일 미국 애틀란타에서 우파 한인회인 '북미주자유민주주의수호연합' 주최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JTBC방송 캡처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25일 미국 애틀란타에서 우파 한인회인 '북미주자유민주주의수호연합' 주최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JTBC방송 캡처

김 최고위원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州) 애틀랜타에서 열린 보수 한인단체 ‘북미주 자유민주주의 수호연합’ 주최 강연회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을 해서 요즘은 그나마 광화문이 우파 진영에게도 민주노총에 대항하는 활동 무대가 됐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극단적인 발언과 정치색으로 제도권 정치에서 금기시되는 전 목사를 향해 “우파 진영을 천하통일 했다”고 추켜세운 것도 문제지만 이미 전 목사 관련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상황에서 재차 논란을 빚었다는 걸 당내에선 무겁게 보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12일에도 전 목사가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해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해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건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대통령실이 나서서 “윤 대통령의 5·18 정신 계승 입장은 확고하다”는 입장을 밝히기까지 했다. 당시 김 대표는 공개 경고 대신 김 최고위원을 따로 만나 자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 뒤 김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매우 죄송하다.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공개 경고에도 당내 불안감…“더 따끔하게 처방해야”

그러나 김 최고위원을 배려한 김 대표의 ‘조용한 경고’는 소용이 없었다. 김기현 대표 체제 출범 후 지난 23일 전북 전주에서 처음 개최된 현장 최고의원회의에 불참한 김 최고위원은 미국 출장을 이유로 지난 2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회의를 전후로 김 최고위원이 미국에서 한 문제 발언이 정치권에 삽시간에 퍼졌고 당내에서조차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당장 내년 총선을 걱정하는 당내 인사들은 “5·18 발언에 이어 전광훈 목사와 자꾸 엮이니 중도층이 모두 떠나가겠다”는 걱정을 쏟아냈다.

계파를 뛰어넘는 공개 비판도 잇따랐다. 유승민 전 의원은 28일 KBS 라디오에서 “민심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당연히 당 윤리위원회에서 징계해야 한다”며 “대체 국민께서 어떻게 보실까 정말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김 최고위원과 경쟁했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맨날 실언만 하는 사람은 그냥 제명해라. 경고해본들 무슨 소용 있나”라고 맹비난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유상범 수석대변인도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언어를 전략적으로 구사하는 것에 감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홍준표 대구시장이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강도 높은 비판 행렬에도 김 대표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다소 미지근한 태도였다. 그는 최고위원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전후 문맥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도된 것만 봤다”거나 “내용이 뭔지 좀 더 파악을 해보고, 본인 얘기도 들어보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폈다. 영남권 중진 의원은 “김 대표가 좀 더 빠르게 경고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었다”며 “조금 뒤늦은 메시지라도 수위를 확 올렸다면 국민 공분도 금방 사그라들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코로나19가 확산중이던 2020년 대규모 광복절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전 목사는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벌금 450만원을 선고받았다. 뉴스1

코로나19가 확산중이던 2020년 대규모 광복절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전 목사는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벌금 450만원을 선고받았다. 뉴스1

김 대표의 공개 경고에도 김 최고위원의 실언은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을 ‘실수’가 아닌 ‘전략’으로 보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김 최고위원이 전 목사에 결을 맞추는 발언을 반복하는 건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금배지가 없는 김 최고위원은 22대 총선에서 대구 12개 지역구 중 한 곳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구·경북은 공천을 받으려면 결국 경선을 해야 할 텐데, 그 때 전 목사의 조직력이 도움이 될 걸로 보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는 “김 최고위원은 또 설화를 빚을 수 있다”며 “단순한 만류나 공개 경고에 그칠 것이 아니라 따끔한 처방을 해야 김 대표의 영(令)이 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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