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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향해 "나 좀 보라"…한∙미 결속 핑계 삼은 北도발의 속내

중앙일보

입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군 관련 공개활동에 집중하며 군사적 밀착을 강화하는 한·미·일을 향한 핵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핵 투발 장소와 발사 플랫폼을 다양화하는데 주력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전쟁 억지력을 부각하는 전술을 펼치는 모습이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핵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 시험과 전략순항미사일 핵탄두 모의 공중폭발시험을 각각 진행했다고 24일 보도했다. 사진은 핵무인수중공격정이 자제적으로 설정한 목표지점에서 폭발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매체들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핵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 시험과 전략순항미사일 핵탄두 모의 공중폭발시험을 각각 진행했다고 24일 보도했다. 사진은 핵무인수중공격정이 자제적으로 설정한 목표지점에서 폭발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타이밍 맞춘 김정은의 도발

김정은은 지난달 말 이례적으로 농촌 문제를 단일 안건으로 상정한 노동당 전원회의 확대회의(8기 7차)를 개최하며 민심을 다독이는 듯한 행보를 보인 이후 줄곧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핵·미사일 관련 공개 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다.

북한 관영 매체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 8일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발사를 참관한 데 이어 11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주재했다. 또 16일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발사 훈련을 지도했고, 18일부터 19일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발사훈련을 참관했다. 21일부터 23일까지는 핵 어뢰의 일종인 '해일'과 전략순항미사일의 공중폭발타격 훈련까지 현장에서 지휘했다.

이러한 김정은의 이번달 공개 활동은 대부분 한·미 군사 훈련에 대한 맞대응 성격을 띠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한반도 주변에서 신냉전 구도가 발현하는 상황을 틈타 자신들의 국방력 강화 전략을 달성하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내외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건배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건배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이 노린 '1석4조'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을 핑계 삼아 벌이는 연쇄 도발은 '1석 4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먼저 최근 북한의 도발은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계기로 '반미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특히 중·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유엔 차원의 제재는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실제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매번 중·러의 반대로 이를 규탄하는 의장 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한 채 번번이 빈손으로 끝나고 있다.

김정은은 이러한 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해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 확대회의(8기 6차)에서 "(미국이) 일본, 남조선과의 3각 공조 실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동맹강화'의 간판 밑에 '아시아판 나토'와 같은 새로운 군사 블록을 형성하는데 골몰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도발에 따른 신냉전 구도 가속화의 책임을 한·미에 돌리기도 했다.

핵심은 미국의 '관심 끌기'

이러한 적반하장 전략의 목표는 미국을 향한 '관심 끌기' 차원인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북·미 정상회담에 응했던 전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달리, 조 바이든 행정부는 대외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북한 문제를 사실상 '후순위'로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하반기에 진행된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ICBM, SRBM, 전투기, 방사포 등 가용한 군사전력을 총동원하며 위협 수위를 높였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여전히 대중국 정책과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등에 이은 '후순위'로 대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0일 ″조선인민군 서부전선장거리포병부대 해당 방사포병구분대가 20일 아침 7시 방사포 사격 훈련을 진행했다″며 ″600mm 방사포를 동원하여 발사점으로부터 각각 계산된 395km와 337km 사거리의 가상 표적을 설정하여 동해상으로 2발의 방사포탄을 사격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0일 ″조선인민군 서부전선장거리포병부대 해당 방사포병구분대가 20일 아침 7시 방사포 사격 훈련을 진행했다″며 ″600mm 방사포를 동원하여 발사점으로부터 각각 계산된 395km와 337km 사거리의 가상 표적을 설정하여 동해상으로 2발의 방사포탄을 사격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북한이 최근 한·미의 기존 시스템으로 대응이 어려운 다양한 발사 플랫폼에 전술핵 탄두를 탑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관심을 북한으로 돌려 향후 전개될 수 있는 대화에서 유리한 국면을 점하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한·미의 재래식 전력에 대한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전술핵 카드를 앞세우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北 식량난 속 한·미 공조 급속 강화

이러한 북한의 의도와 달리 윤석열 정부 들어 그간 경색됐던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정상화 하고,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한·미·일 공조 수위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그러자 북한은 최근 무차별적 도발을 벌이며 도발의 이유를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자위권 차원의 대응"이라는 억지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중 대결 국면을 최대한 활용해 군사력 강화를 이뤄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결 지형을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한다. 실제 김정은은 2021년 10월 국방발전전람회 연설에서 "우선 강해지고 봐야 한다"며 장기적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24일 "21일부터 23일까지 새로운 수중공격형 무기체계에 대한 시험을 진행했다"라고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핵 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 시험과 전략순항미사일의 모의 핵탄두 공중폭발 시험을 진행했다. 뉴스1

노동신문은 24일 "21일부터 23일까지 새로운 수중공격형 무기체계에 대한 시험을 진행했다"라고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핵 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 시험과 전략순항미사일의 모의 핵탄두 공중폭발 시험을 진행했다. 뉴스1

배고픈 주민의 관심 돌리기 

북한의 최근 무력도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경제난에 따른 민심 이반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란 분석도 있다.

북한 매체들은 각종 핵·미사일 도발과 관련한 소식을 전하며 김정은에 대한 '절대 충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도 김정은이 '핵무인수중공격정'과 ICBM 화성-17형 발사 등을 직접 지도했던 사실을 강조했는데, 보도 내용은 김정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의 필요성과 한·미에 대한 적개심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코로나19와 자연재해 등의 영향으로 민생문제에 어려움 겪는 주민들을 의식해 한·미 연합훈련을 부각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며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을 고조시켜 내부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동시에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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