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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KT ‘낙하산 대 카르텔 충돌’ 언제까지 이런 구태 봐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오는 31일 KT 정기 주주 총회에서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의 차기 대표이사 선임 여부가 판가름날 예정이었으나 이에 앞서 윤 내정자가 27일 사퇴했다. 연합뉴스.

오는 31일 KT 정기 주주 총회에서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의 차기 대표이사 선임 여부가 판가름날 예정이었으나 이에 앞서 윤 내정자가 27일 사퇴했다. 연합뉴스.

여권 압박에 구현모 대표 이어 윤경림 내정자 사퇴

정부의 인사 개입과 내부 셀프 연임 모두 개혁돼야

윤경림 KT 차기 대표이사 내정자가 정기 주총을 나흘 앞둔 어제(27일) 공식 사퇴했다. 매출 25조원, 재계 서열 12위인 통신기업이 바로 KT다. 이 수장 자리를 둘러싼 새 정부와 기존 경영진의 갈등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부조리극은 일단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앞서 지난 문재인 정권 당시 선임된 구현모 대표는 여권의 노골적인 비토로 지난달 연임을 포기했다. 이어 선임된 윤경림호마저 출범도 하지 못한 채 좌초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 온 KT CEO의 수난사가 이번에도 재연됐다. 이달 말로 구 대표의 임기가 끝나는 만큼 당분간 경영 공백은 불가피하다.

후임 인선도 첩첩산중이다. 여권은 비단 윤 내정자뿐 아니라 이달 초 KT 이사회가 경선을 통해 추린 4명의 내부 출신 차기 후보군 모두를 ‘이권 카르텔’이라며 거세게 비판했었다. 신임 경영진에 더해 현 이사진에 대한 불신을 내비친 셈이다. 윤 내정자가 이날 사퇴하면서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대표가 선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가 윤 내정자 선임에 찬성 의사를 밝힌 와중에 벌어진 일인 만큼 KT 안팎에서는 결국 여권이 원하는 인사가 내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우려가 현실화한다면 카르텔 치웠더니 낙하산이 떨어지는 셈이다.

KT의 이번 대표 선출 과정은 주인 없는 소유분산형 기업을 둘러싼 온갖 모순이 극대화해서 표출된 사례다. 정부와 KT 모두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선 정부는 민영화된 지 이미 20년도 더 지난 민간 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나쁜 선례를 다시 남겼다. 개입 자체도 문제지만 동원된 방법 역시 도를 넘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구 대표와 일당들에 대한 수사를 조속히 착수할 것”이라며 거친 언사로 KT를 압박했다. 검찰은 실제로 친여권 시민단체의 고발을 내세워 구 대표와 윤 내정자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대통령뿐 아니라 정부 요직이 검찰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가뜩이나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는 현 정부가 아무 절차적 하자 없는 민간기업 CEO 선임을 무산시키려고 검찰을 동원했다는 오해를 사기에 알맞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에 줄을 대며 코드를 맞춰 온 KT 지배구조의 취약점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윤 내정자는 여권의 반발이 이어지자 윤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과, 윤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을 영입했다. 하지만 이들이 줄줄이 후보직을 내던지면서 결국 자신도 사퇴로 몰렸다. 지난 정권 당시 구 대표가 정권 눈치보느라 친문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것과 똑같다. 이런 정치 외압과 정치권 줄대기 모두 이젠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