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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슬기가 소리내다

아빠에게 '한달 출산휴가' 주자…이게 현실적인 이유 5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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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슬기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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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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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이 0.78을 기록하면서 곳곳에서 비상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시에 여러 정책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온다. 그중에 하나가 남성 육아휴직 의무제 내지 할당제다. 아이가 태어나면 남성도 의무적으로 육아 휴직을 쓰도록 강제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녀 한 명당 부모 각각 1년씩, 유급 휴직을 쓸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25~54세 여성 고용률은 6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4.6%포인트 낮다(2021년). 2022년 합계 출산율은 0.78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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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육아휴직, 소득 감소와 경력 손실 불러와 

육아휴직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외국 사례가 있다. 휴직 기간 경력 손실과 소득 감소로 인한 불이익, 또 한편으로는 조직관리의 어려움으로 인한 불만이 특정 집단으로 향하게 된 경우이다. 육아휴직이 오히려 성 평등을 저해하고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킨다. 한국의 경우가 딱 그렇다. 유급이라고 하지만 급여 한도가 최대 150만원이다.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경우라면 소득 감소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갖가지 차별적 시각이 더해진다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북유럽의 ‘라떼파파’는 남성의 육아 휴직이 보편화하면서 확산되었다. 남자가 육아 참여를 하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남자들로 하여금 아이와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내게 하는 것이다. 육아 휴직의 긍정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도, 육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도 남성 육아 휴직 활성화는 필요하다.

그런데 남성 육아휴직 의무제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먼저 의무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있다. 그간 저출산 정책이 효과가 없었던 것은 정책 대상자인 청년들이 저출산 정책을 자신을 위한 정책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탓이 크다. 청년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국가적 목표의 동원 대상으로 취급한다고 느낀다.

이런 반감은 청년층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갖고 있다. 출산과 양육은 개개인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결정이다. 이것을 의무로 접근해서는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마음을 얻지 못하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또 하나는 휴직이 갖는 어려움과 관련이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육아휴직은 개인에게도, 조직에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다 보니 육아휴직은 여력이 있는 정부·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위주로 사용이 되고 있다. 설사 의무화한다고 해도 이를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 없다면 확산은 어려울 것이다. 확산이 가능한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아이 태어나면 긴 휴가가 당연한 권리 돼야

필자는 남성 육아휴직 의무제 대신에 한 달간의 아빠 출산휴가를 제안한다. 아빠 출산휴가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육아휴직이 아니라 출산휴가의 형태이다. 휴직은 상대적으로 긴 기간이며 신청과 승인 절차가 더 복잡하다. 이에 반하여 휴가는 짧은 기간 사용하고 절차도 간단하다. 휴직이 선별적이라면 휴가는 보편적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백 걸음이 아니라, 백 사람이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것이다. 결혼과 장례를 치르면 당연히 휴가를 다녀오는 것처럼, 자녀 출산을 하게 될 경우 긴 휴가를 다녀오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무보다는 권리 행사의 방식으로, 아빠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시기의 문제이다. 자녀출산 시점부터 한 달 이내에 쓰기 시작해서 석 달 이내에 다 쓰도록 하자.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을 활용하는 경우를 고려했을 때 휴가는 분할해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출산 초기는 어느 때보다 도움이 절실한 시기이다. 신생아는 하루 24시간 돌봄이 필요하다. 산모는 몸조리가 필요하다. 손위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돌봐줄 이도 필요하다. 그 역할을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시기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무엇이든 첫 시작이 중요하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면 이에 맞는 역할 규범들이 만들어진다. 신혼 초에 부부 싸움이 잦은 것도 규칙들을 서로 만드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일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삶은 크게 변화한다. 이 변화를 아빠와 엄마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한 달이라는 기간이다. 현재 여성은 출산 전후 휴가가 90일이다. 남성은 배우자 출산휴가가 유급 10일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유급 3일 무급 2일에 불과했다. 이것을 최소한 유급 한 달로 늘리자. 아빠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익숙해지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또 대체 인력 없이 회사에서 줄 수 있는 휴가 기간은 최대한 얼마나 될까? 이 접점 범위 안에서 휴가 기간은 결정돼야 한다.

출산율 감소, 가장 큰 원인은 그래픽 이미지.

출산율 감소, 가장 큰 원인은 그래픽 이미지.

아빠 출산휴가 통해 양육의 공동 책임자로 

필자를 포함한 연구팀이 2018년부터 2019년에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한 달 육아휴직을 쓴 남성들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긍정적 변화를 보여줬다. 육아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그러면서도 자녀와 함께 하는 소중한 추억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자녀와의 관계도, 부부 관계도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홀로 도맡은 책임감에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아내가, 남편과 육아를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다는 말도 들었다. 복직 후에도 자녀 양육의 공동 책임자로서 돌봄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달이 짧은 경험이었지만 긍정 효과가 지속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인터뷰한 직장인들은 대체 인력 없는 최대 휴가 기간을 한 달에서 석 달 사이로 답했다. 업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달을 비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조직이 작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나마 출산휴가 시점은 대체로 예측할 수 있다. 미리 준비한다면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쁘고 힘들게 일하는 한국 상황에서 당장 한 달을 넘어가는 휴가를 보편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한 달 아빠 출산휴가로 시작하자. 앞으로 출산휴가에 대한 관용도가 나아진다면 기간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100% 임금을 보전해주는 유급휴가여야 한다. 급여가 아주 많은 경우에는 제약을 둔다 하더라도 절대다수는 소득 감소를 걱정하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어야 한다. 2021년 남성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383만원이었다. 한해 25만 명에게 한 달 월급을 지원한다면 연간 9500억원이 필요하다. 이 비용 부담은 개별 기업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사용하는 보편적인 휴가가 될 수 있다.

배우자로서가 아닌 아빠 출산휴가 

끝으로 배우자 출산휴가라는 이름은 달라져야 한다. 아직 아빠들의 출산휴가는 공식 명칭이 ‘배우자 출산휴가’다. 아이를 낳은 아빠로서 휴가를 가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출산’했다고 배우자로서 휴가를 간다는 의미이다. 출산을 생물학적 과정으로만 바라보면 출산의 주체는 여성만이 가능하다. 낡은 사고방식이다. 아이를 낳으면서 형성되는 새로운 관계와 역할에 주목한다면 남성도 출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배우자로서가 아니라 아빠가 되면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아빠 출산휴가로 제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