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3층짜리 다세대주택에서 불이 나 나이지리아 국적 어린이 4명이 사망했다. 이날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3/28/b59b125b-8317-46c5-8f35-4a13dac5d569.jpg)
27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3층짜리 다세대주택에서 불이 나 나이지리아 국적 어린이 4명이 사망했다. 이날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허름한 차림으로 다니다보니 한국 사람들이 좀 무시하고, 해코지도 하고 했지만 그래도 활발하고 성실했어요.”
27일 경기도 안산 선부동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자녀 4명을 잃은 A씨(55) 가족을 정정자 세계사랑교회 목사는 이렇게 기억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A씨 가족의 한국 적응을 도왔다는 정 목사는 “우리 딸들이 그 집 애들을 참 좋아해서 같이 바깥에 놀러도 다니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지…”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A씨 가족의 삶을 잿더미로 만든 불은 이날 오전 3시 28분쯤 시작됐다. A씨가 살던 2층 투룸(21㎡) 거실의 멀티탭에서 화재가 발생한 걸로 소방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40여분 만에 불은 꺼졌지만, A씨의 11살·4살 난 딸과 7살·6살 난 아들은 잠을 자던 안방에서 누워있는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일곱 식구 가운데 살아남은 건 A씨, 부인 B씨(41)와 몸을 피할 때 안고 있었던 2살 난 막내딸 셋뿐이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A씨는 거실에서 잠을 자다가 불이 난 걸 인지했다. 이후 아내와 아이들이 자던 안방문을 두드린 뒤 맨발로 뛰쳐나가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했다. A씨는 물을 퍼나르며 불을 끄려는 시도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거센 불길에도 아이들을 구하려고 뛰어드는 A씨를 이웃들이 막아 세웠다. A씨는 발과 오른쪽 팔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병원으로 옮겨졌다. 아이들 사망 소식을 들은 B씨는 혼절했다고 한다.
A씨는 2008년 무역경영비자(D9)로 한국에 들어왔다. B씨도 남편을 따라 2012년부터 한국에 터를 잡았다. 부부는 한국에서 아이 다섯을 모두 낳았다. A씨는 폐기물 처리 업체나 재활용 업체 등을 돌며 가전제품이나 헌 옷 등을 사들였다. 이를 컨테이너에 실어 나이지리아로 보내는 일을 하며 일곱 식구의 생계를 꾸렸다.
A씨 집 근처에서 마트를 하는 김구연씨는 “A씨 부부가 아이들 먹을 초콜릿을 사러 자주 왔었는데, 가족끼리 행복하게 잘 살았던 걸로 기억한다. A씨가 한국말도 잘하고 성실했다”고 말했다. 12년 전부터 A씨를 알고 지냈다는 나이지리아인 추쿠에메카(48)도 “아주 강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고 기억했다.
화마가 A씨 가족을 덮친 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1월에도 A씨 가족이 살던 안산시 다세대주택 지하 1층에 불이 났다. 당시 5살이던 첫째 아들이 목 부위 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아내와 둘째 딸(당시 4세), 둘째 아들(당시 2세)도 연기를 흡입해 치료를 받았다.
불이 난 건물에는 A씨 가족 외에도 나이지리아와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웃 37명은 제때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 박천응 안산다문화교회 목사는 “건물이 낙후됐지만, 집값이 저렴해서 외국인이 끊이지 않고 유입되는 곳”이라고 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이 난 다세대주택 안에는 소화경보기나 소화기 등도 없었다고 한다.
A씨 부부가 입원한 병원을 찾은 주한 나이지리아 대사관 관계자는 “비극적인 일이 생겨서 너무나 슬프다. 나이지리아 대사관과 커뮤니티가 슬픔을 함께하겠다”고 했다. 안산시는 화재 건물에 살던 이들을 시청이 마련한 별도 거주시설로 옮기도록 했다.
경찰은 목격자와 거주자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며 화재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자의 시신도 부검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