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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이라도 해달라" 범인에 호소한 개구리소년 유족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7일 오후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선원공원 개구리소년 추모 및 어린이 안전 기원비 앞에서 열린 '故 개구리소년 32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유족대표 우종우(우철원 군 아버지)씨가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뉴스1

27일 오후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선원공원 개구리소년 추모 및 어린이 안전 기원비 앞에서 열린 '故 개구리소년 32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유족대표 우종우(우철원 군 아버지)씨가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뉴스1

"범인에게 호소합니다. 이제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받을 수도,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모두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양심선언을 해 주십시오. 아무런 이유도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슨 잘못으로 어떻게,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날의 진실을 꼭 알아야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27일 오후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선원공원 개구리소년 추모비. 개구리 소년 유족과 전국 미아·실종 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이하 전미찾모) 등은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32주기를 맞아 추모제를 열고 이같이 호소했다.

32년 전 아들 철원군을 잃은 우종우(75)씨는 추도사에서 “기억 속에서 점점 잊히고 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너희들 죽음과 진실을 꼭 밝혀내겠다”며 “살아 있었다면 40세를 넘어선 중년으로 결혼해 손주를 데리고 올 나이인데, 아직도 어린 소년으로 머물러 있어 미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날 유족 등은 정부와 국회에 추모관 건립 등을 촉구했다.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은 성명서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숯 검댕이 된 가슴을 쥐어뜯으며 32년간 술과 한숨으로 지내다 보니, 사망 또는 치매·뇌경색·퇴행성관절염 등 병들어 자식들 혼이 담긴 이 추모비가 있는 자리도 못 올라오는 비통한 현실이 됐다”며 “추모관 건립, 개구리소년 유족 심리치료와 생계지원, 개구리소년 사건 등 살인죄 진정소급입법 제정, 사건 진상규명 위원회 설치 등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실종 11년 뒤 유골로 발견

실종된 대구 성서초등교 개구리소년 부모들이 30일 서울역 앞에서 어린이들을 찾아달라는 내용의 전단을 나눠주고 있다.

실종된 대구 성서초등교 개구리소년 부모들이 30일 서울역 앞에서 어린이들을 찾아달라는 내용의 전단을 나눠주고 있다.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에서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됐다. 김종식(9)·박찬인(10)·김영규(11)·조호연(12)·우철원(13) 군은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11년 뒤인 2002년 9월 26일 아이들은 와룡산 기슭에서 모두 유골로 발견됐다.

경북대 법의학팀은 그해 11월 “유골 5구 가운데 3구 이상 두개골에서 사망 당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인위적 손상 흔적이 발견됐다”면서 “이는 타살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년 유골에 나타난 손상 흔적은 넘어지거나 추락하는 등 사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외상은 절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수사는 진전이 없었고, 수많은 의혹만 남긴 채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유골은 발견됐지만, 범인이나 사건 경위 등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저체온증으로 자연사” 주장도 

2002년 대구시 와룡산에서 발견된 개구리 소년 유골 현장을 찾은 유가족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두개골 복원전문팀, 경북대 법의학교실 관계자들의 유골 발굴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 대구시 와룡산에서 발견된 개구리 소년 유골 현장을 찾은 유가족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두개골 복원전문팀, 경북대 법의학교실 관계자들의 유골 발굴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경찰은 “아이들은 타살이 아닌, 저체온증으로 자연사했다”라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이러한 주장을 담은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라는 제목의 책이 발간됐다.

수사책임자이자 당시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이던 김영규 전 총경은 전국을 뒤졌지만, 상흔과 일치하는 범행도구를 찾지 못했다는 점, 아이들 옷에 묶인 매듭은 누군가 강제로 묶은 게 아니라 추워서 직접 묶었을 것이라는 추정 등을 자연사 근거로 들었다.

유족들은 당일 기온이 최저 3.3도, 최고 12.3도였고 오후 6시쯤부터 내린 8.2㎜의 비 때문에 사망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반박한다. 유골 발견 당시 대한산악연맹 대구지부 관계자는 “애들 집에서 유골 발견 지점까지는 어린이 걸음으로 1시간, 민가까지는 5분이면 충분하다”라고도 했다.

개구리 소년 사건은 2019년 민갑룡 전 경찰청장 지시로 다시 수사하고 있다. 대구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은 아직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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