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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중 학도병 127명의 위대한 용기…추모행사 후원한 노부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7일 오전 강원 태백시 구문소동 태백중학교 학도병 기념관에서 열린 ‘학도병 추모 문예대회 ’ 시상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태백중 학도병 출신 이용연(92)씨와 후원을 한 6·25 재단 구성열(80)·김창화(76)씨 부부. [사진 태백중]

27일 오전 강원 태백시 구문소동 태백중학교 학도병 기념관에서 열린 ‘학도병 추모 문예대회 ’ 시상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태백중 학도병 출신 이용연(92)씨와 후원을 한 6·25 재단 구성열(80)·김창화(76)씨 부부. [사진 태백중]

127명 학도병과 전사한 18명 '충혼' 기리는 행사

“대단한 용기를 갖고 6·25전쟁에 참전하신 모든 학도병분께 감사드립니다.”

27일 오전 강원 태백시 구문소동 태백중학교 학도병 기념관에서 열린 ‘학도병 추모 문예대회’ 시상식에서 허연우(15·3년)군이 한 말이다. 허 군은 이날 장려상을 받았다. 학도병 추모 문예대회는 한국전쟁 당시 자진 입대한 태백중 학도병 127명과 그 중 전사한 18명의 충혼을 기리는 행사다.

허군은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전쟁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를 봤는지 배워서 알고 있다. 온 나라가 폐허가 됐다”며 “저라면 용감하게 나서지 못했을 것 같다. 참전하신 학도병분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문예대회에 참여한 94명 중 3명이 우수상을, 27명이 장려상을 받았다. 또 참가자 전원은 문화상품권과 기념품 등 선물을 받았다.

선물은 미국 버몬트주 루퍼트에 사는 구성열(80)·김창화(76)씨 부부가 마련했다.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가 56년째 사는 구씨는 “6·25 전쟁 당시 부산까지 후퇴하던 상황에서 낙동강은 배수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낙동강 전투가 없었다면 한국은 공산주의 체제가 됐을 것”이라며 “6·25전쟁에 참전한 태백중 학도병들의 위대한 용기와 정신에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강원 태백시 구문소동 태백중학교 학도병 기념관에서 열린 ‘학도병 추모 문예대회 ’ 시상식이 열렸다. [사진 태백중]

27일 오전 강원 태백시 구문소동 태백중학교 학도병 기념관에서 열린 ‘학도병 추모 문예대회 ’ 시상식이 열렸다. [사진 태백중]

태백중 학도병 이용연(92) 화백회장도 참석

이날 시상식에는 구씨 부부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손자·손녀도 함께 참석했다. 또 태백중 학도병 출신으로서 전쟁에 직접 참전한 화백회장 이용연(92)씨도 찾아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학교 관계자는 “구성열씨 부부가 6·25 참전 학도병 전통에 빛나는 태백중 충혼탑을 보고 큰 감동을 하였고, 이후 e메일을 통해 학교와 수년간 소통해왔다”며 “올해 고국 방문 일정이 있어 학교 측과 협의해 학도병 추모 문예대회를 후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구씨 부부는 2018년 6·25 재단을 설립했다. 6·25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젊은 미군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함을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미군은 3만 6516명에 이른다. 재단은 매년 6월 25일에 6·25 전쟁 기념 걷기 행사인 ‘리버티 워크(Liberty Walk·자유의 걸음)’를 열고 있다.

리버티 워크로 모은 기부금은 전사자 고향 초교 도서관에 기부한다. 해당 도서관은 전사자 이름을 딴 명판을 새긴다. 재단은 성금에 사재를 보태 2020년부터 미 참전용사 고향 초교에 5000달러(약 648만원)씩을 기부해왔다. 지난해엔 처음으로 한국에서 리버티 워크 열었다. 한국전 미 참전용사를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을 출발해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약 4㎞를 걷는 행사였다.

27일 오전 강원 태백시 구문소동 태백중학교 학도병 기념관에서 열린 ‘학도병 추모 문예대회 ’ 시상식이 열렸다. [사진 태백중]

27일 오전 강원 태백시 구문소동 태백중학교 학도병 기념관에서 열린 ‘학도병 추모 문예대회 ’ 시상식이 열렸다. [사진 태백중]

6·25 재단 4~5월 미국 내 8곳 초교 기부 예정

6·25 재단은 지난해 12월까지 캐나다 온타리오 수잔나무디 초교를 포함해 미국과 캐나다 초교 총 22곳에 기부했다. 이어 오는 4~5월에도 미국 내 8곳 초교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1951년 1월 9일 태백중 교정에 모인 학생 127명은 1·4 후퇴 5일만인 그날 6·25 참전을 다짐했다고 한다. 이후 4일을 꼬박 걸어 찾아간 군대에서 몇몇이 체구가 작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를 거절당했다. 학생들은 “38선만 돌파하면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결국 사단장 허락을 받은 학생들은 3일간 교육을 받고 영월 녹전 전투 등에 참전했다. 당시 단일 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자원입대한 곳은 태백중이 유일했다고 한다. 참전한 127명 중 18명은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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