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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하명수사 알린 검사…은퇴 후 밀원수 100억 그루 심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전 울산지검장)이 지난 25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야산에 조성된 사계절 꿀벌목장 시범단지에서 꿀벌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전 울산지검장)이 지난 25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야산에 조성된 사계절 꿀벌목장 시범단지에서 꿀벌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 밀원숲 전도사로 변신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양봉 전문가로 변신했다. 그는 주 중에는 법조인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꿀벌을 기르고 밀원수를 심는다. 송인택(60)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 얘기다.

지난 25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꿀벌목장 시범단지에서 송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만나자마자 "‘설탕물 꿀벌’ 사육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카시아 꿀 채취가 끝나는 5월이 되면 벌한테 설탕물을 잔뜩 줘서 꿀 양을 늘리는 양봉 농가가 많다”며 “꽃이 지는 9월 말 이후에 또 설탕물을 잔뜩 준다. 1970년대 들어 설탕 단가가 낮아지면서 이 방식이 판을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양한 밀원수 숲을 조성해 연중 벌이 먹을 수 있는 꽃과 꿀이 있다면 지금 키우는 벌보다는 건강하고, 바이러스 저항력도 향상될 것”이라고 했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 야산에 조성 중인 꿀벌목장 시범단지. 사진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충북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 야산에 조성 중인 꿀벌목장 시범단지. 사진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영동 학산면에 33만㎡ 사계절 꿀벌목장 조성 

송 이사장은 2019년 울산지검장을 끝으로 24년간 검사생활을 마쳤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진 김기현 전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대표) 관련 직권남용·뇌물수수 사건(2018년)을 ‘혐의없음’ 처분한 일화가 유명하다. 청와대 하명을 받은 울산경찰이 김 전 시장을 낙선시킬 목적으로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게 논란 요지였다. 송 이사장은 당시 95쪽에 달하는 불기소 결정문을 통해 경찰 행태를 비난했다.

퇴임 후엔 양봉과 밀원수 연구에 푹 빠져있다. 주 중에 법무법인 무영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주말엔 영동에 내려와 벌을 돌본다. 지난해 2월 꿀벌 생태환경 개선을 위한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를 조직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대전 출신인 그는 8남매 중 둘째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진학 전까지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왔다. 송 이사장은 “새벽마다 시골 일을 하면서도 죽어도 못하겠다는 생각은커녕 농사꾼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큰 형이 학업을 접고, 농사를 짓는 바람에 집안 대표로 공부했다고 한다.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오른쪽)이 지난 25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야산에 조성된 사계절 꿀벌목장 시범단지에서 협회 곽영기 사무국장과 함께 밀원수를 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오른쪽)이 지난 25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야산에 조성된 사계절 꿀벌목장 시범단지에서 협회 곽영기 사무국장과 함께 밀원수를 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설탕물 안 먹여도 3월~10월까지 꿀벌 먹이활동” 

양봉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2년 전주지검 차장검사 때다. 송 이사장은 “50살을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는데 문득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 운명은 어떻게 흘러갔을까’란 생각이 스쳤다”며 “내가 잘하는 것은 수사 업무와 농사밖에 없으니, 농사 중에서도 힘이 덜 드는 양봉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뜻이 서자 몸이 움직였다. 송 이사장은 틈날 때마다 인터넷에 나온 외국 자료를 뒤져 꿀벌 생태와 밀원수 연구를 했다. 그는 2016년 무렵 고향과 가까운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 야산 33만㎡(10만평)를 매입해 밀원숲 조성을 준비했다고 한다.

영동 ‘꿀벌 목장’은 2020년 첫 삽을 떴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뽑아내고 꿀이 잘 나오는 피나무· 오가피나무·쉬나무·아카시아·헛개나무·산벚나무·엄나무 등을 심었다. 송 이사장은 “벌이 1년 내내 꿀을 먹고 살 수 있는 꿀벌 목장 개념을 도입해 밀원숲을 꾸미고 있다”며 “3월 회양목과 진달래, 4월에 산벚나무, 5월에 아카시아, 6월에 피나무, 쉬나무 등 개화기에 맞춰 9월~10월까지 꿀벌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꿀을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이 지난 25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야산에 조성된 사계절 꿀벌목장 시범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프리랜서.김성태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이 지난 25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야산에 조성된 사계절 꿀벌목장 시범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프리랜서.김성태

꿀벌 400만마리 목장서 생활 가능 

꿀벌목장 임야는 골이 깊고 가파르다. 송 이사장은 “영동은 국토 중앙에 있어 밀원수 식생 연구에 적합하다고 봤다”며 “산 정상이 500m로 비교적 높아 짧은 구간에 다양한 수종을 심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경제림 위주 조성으로 밀원수가 적다 보니 꿀벌 먹이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밀원수 식재가 끝나면 최소 5년, 적어도 15년 뒤에는 꿀벌 100통(350만~400만 마리)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죽기 전에 밀원수를 100억 그루 이상 심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는 오는 31일 꿀벌목장 시범단지에서 밀원숲 가꾸기 행사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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