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택 전 울산지검장 밀원숲 전도사로 변신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양봉 전문가로 변신했다. 그는 주 중에는 법조인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꿀벌을 기르고 밀원수를 심는다. 송인택(60)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 얘기다.
지난 25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꿀벌목장 시범단지에서 송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만나자마자 "‘설탕물 꿀벌’ 사육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카시아 꿀 채취가 끝나는 5월이 되면 벌한테 설탕물을 잔뜩 줘서 꿀 양을 늘리는 양봉 농가가 많다”며 “꽃이 지는 9월 말 이후에 또 설탕물을 잔뜩 준다. 1970년대 들어 설탕 단가가 낮아지면서 이 방식이 판을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양한 밀원수 숲을 조성해 연중 벌이 먹을 수 있는 꽃과 꿀이 있다면 지금 키우는 벌보다는 건강하고, 바이러스 저항력도 향상될 것”이라고 했다.
영동 학산면에 33만㎡ 사계절 꿀벌목장 조성
송 이사장은 2019년 울산지검장을 끝으로 24년간 검사생활을 마쳤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진 김기현 전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대표) 관련 직권남용·뇌물수수 사건(2018년)을 ‘혐의없음’ 처분한 일화가 유명하다. 청와대 하명을 받은 울산경찰이 김 전 시장을 낙선시킬 목적으로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게 논란 요지였다. 송 이사장은 당시 95쪽에 달하는 불기소 결정문을 통해 경찰 행태를 비난했다.
퇴임 후엔 양봉과 밀원수 연구에 푹 빠져있다. 주 중에 법무법인 무영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주말엔 영동에 내려와 벌을 돌본다. 지난해 2월 꿀벌 생태환경 개선을 위한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를 조직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대전 출신인 그는 8남매 중 둘째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진학 전까지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왔다. 송 이사장은 “새벽마다 시골 일을 하면서도 죽어도 못하겠다는 생각은커녕 농사꾼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큰 형이 학업을 접고, 농사를 짓는 바람에 집안 대표로 공부했다고 한다.
“설탕물 안 먹여도 3월~10월까지 꿀벌 먹이활동”
양봉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2년 전주지검 차장검사 때다. 송 이사장은 “50살을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는데 문득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 운명은 어떻게 흘러갔을까’란 생각이 스쳤다”며 “내가 잘하는 것은 수사 업무와 농사밖에 없으니, 농사 중에서도 힘이 덜 드는 양봉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뜻이 서자 몸이 움직였다. 송 이사장은 틈날 때마다 인터넷에 나온 외국 자료를 뒤져 꿀벌 생태와 밀원수 연구를 했다. 그는 2016년 무렵 고향과 가까운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 야산 33만㎡(10만평)를 매입해 밀원숲 조성을 준비했다고 한다.
영동 ‘꿀벌 목장’은 2020년 첫 삽을 떴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뽑아내고 꿀이 잘 나오는 피나무· 오가피나무·쉬나무·아카시아·헛개나무·산벚나무·엄나무 등을 심었다. 송 이사장은 “벌이 1년 내내 꿀을 먹고 살 수 있는 꿀벌 목장 개념을 도입해 밀원숲을 꾸미고 있다”며 “3월 회양목과 진달래, 4월에 산벚나무, 5월에 아카시아, 6월에 피나무, 쉬나무 등 개화기에 맞춰 9월~10월까지 꿀벌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꿀을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꿀벌 400만마리 목장서 생활 가능
꿀벌목장 임야는 골이 깊고 가파르다. 송 이사장은 “영동은 국토 중앙에 있어 밀원수 식생 연구에 적합하다고 봤다”며 “산 정상이 500m로 비교적 높아 짧은 구간에 다양한 수종을 심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경제림 위주 조성으로 밀원수가 적다 보니 꿀벌 먹이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밀원수 식재가 끝나면 최소 5년, 적어도 15년 뒤에는 꿀벌 100통(350만~400만 마리)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죽기 전에 밀원수를 100억 그루 이상 심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는 오는 31일 꿀벌목장 시범단지에서 밀원숲 가꾸기 행사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