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사진 꼭 버려주세요” 지옥서도 아이들 챙긴 엄마

  • 카드 발행 일시2023.03.28

수년 전 범죄 피해 현장 청소 지원을 위해 다녀왔던 현장의 이야기다.

마침 현장 검증이 진행된 날. 내가 도착했을 때 포승줄에 묶인 가해자가 현장 검증을 끝내고 현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40대 초반가량으로 보이는 여자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힐끔 곁눈질하면서도 나는 장비들을 챙기며 일에만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때까지는 현장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때 갑자기 시간이 멈춰버린 듯 모든 소리가 잦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현장을 빠져나오던 여자가 내 쪽으로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정한 듯 곧 말을 건넸다.

“아이들이 살아야 할 곳이에요. 2층에 아이들 아빠의 사진이 있습니다. 꼭 버려 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게 깨끗이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편안해 보였던 여자의 얼굴은 이내 어두워졌고, 한없이 슬퍼 보였다. 그녀는 그렇게 뒤돌아서서 멀어져갔다.

현장은 오래된 주택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되었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여자가 걱정하던 아이들은 셋. 대학생인 큰딸,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막내딸이 있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첫아이가 태어난 뒤부터 포악해졌고 폭력을 일삼았다고 한다. 폭력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고 아이들에게도 손찌검을 했단다. 부부는 이혼했지만, ‘전 남편’은 계속 집으로 찾아왔다. 사건이 벌어진 날도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고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안주를 더 만들어 오라며 흉기를 들고 위협했다. 여자는 아이들까지 다칠 것 같아 막아섰다. 그리고 아이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여자는 더 깊은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선택을 했다. 결국 전 남편을 살해한 것이다.

여자는 경찰에 자수했고, 살인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중죄지만, 사건에 대해 알게 된 내 가슴속에선 무언가 울컥 치밀어올랐다. 아마 나의 어린 시절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싸우는 부모님과 내게 화풀이했던 엄마. 온몸에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맞아야 끝났던 하루. 부모님의 다툼이 시작되면 요란하게 쿵쾅대던 심장소리. 어린 나는 내가 사라져야 이 싸움이 멈춰질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은 그렇게 유년시절을 지옥에서 보내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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