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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만 짜주는 연 50만원 영양사 고용해 벌금…헌재 “처벌규정 불명확, 위헌”

중앙일보

입력

경북의 한 초등학교 급식소 모습. 뉴스1

경북의 한 초등학교 급식소 모습. 뉴스1

급식시설 위생 관리와 같은 직무를 위반한 영양사를 일괄 처벌토록 한 식품위생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지난 23일 식품위생법상 영양사 직무수행 조항(제52조 2항)을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제 96조)에 대해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현행법은 검식·배식관리, 급식시설 위생 관리 등을 영양사 직무로 규정하고,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유치원 원장 A씨였다. A씨는 2015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연 50만원을 주고 영양사 B씨를 고용해 식단표를 작성하는 등 업무를 시키다가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이 확정됐다. 매월 1회 정도만 유치원에 방문해 급식 관련 장부를 점검하는 등 영양사가 해야 할 일을 방기했다는 혐의였다. A씨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됐고, 2019년 5월 재차 “어떤 경우에 직무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봐 처벌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식품위생법에 해당 조항이 만들어진 건 조리사와 영양사의 업무를 구분 짓고, 급식소를 위생적으로 관리해 이용자의 영양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헌재는 “(식품위생법상) 처벌 대상에 관한 구체적이고 유용한 기준은 도출해낼 수 없고, 이에 관한 법원의 확립된 판례도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처벌조항에 규정된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질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예컨대 영양사가 급식시설 위생 관리 업무 중 일부를 누락했다고 하더라도, 영양사를 처벌할 위생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를 ‘업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을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전경. 중앙포토

헌법재판소 전경. 중앙포토

헌재는 그러면서 “이 같은 광범성 및 불명확성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입법자가 질적 차이가 현저한 두 가지 입법 기능을 하나의 조항으로 규율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며 “직무수행 조항은 집단급식소의 업무 전체 내에서 경계를 획정하는 것이므로 포괄적 규정의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벌 조항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구체적으로 범죄행위를 규정할 것이 요청된다”고 덧붙였다.

유남석 헌재 소장과 이선애 재판관은 “예측 가능성이 없다거나, 자의적인 법 해석이나 법 집행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아무런 제한 없이 직무수행 조항을 위반하면 처벌을 하도록 해 형사 제재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운 행위에 대해서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반면 이은애·이미선 재판관은 “(처벌 조항은) 집단급식소의 위생과 안전을 침해할 위험이 있는 행위로 처벌 대상을 한정하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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