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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어짤줄만 알지…짜증난다" 군항제 차출된 MZ공무원 분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6일 오후 경남 창원 '진해군항제'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창원시 공무원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26일 오후 경남 창원 '진해군항제'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창원시 공무원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초과수당도 제대로 못 받아 불만인데 감시까지 한다니 솔직히 짜증납니다.” (창원시 군항제 차출 공무원)

“단순 복무점검이지 감시가 아닙니다. 직원들 사기 떨어질까. 먼 데서 보기만 합니다.” (창원시 군항제 복무단속반)

전국 대표 봄꽃축제 ‘진해군항제’가 한창인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축제로 들뜬 분위기와 달리 대민업무에 동원된 공무원과 이들 근무를 점검하는 공무원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복무 단속을 맡은 감사관실 직원은 멀찍이 떨어져 축제 근무자의 정위치 근무 여부를 살폈다. 직접 대면하진 못했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를 단속반에 축제 근무자 신경도 예민해 져 있었다.

26일 경남 창원 '진해군항제' 관련한 축제 근무자(왼쪽)와 복무단속 근무자의 근무 등록지. 안대훈 기자

26일 경남 창원 '진해군항제' 관련한 축제 근무자(왼쪽)와 복무단속 근무자의 근무 등록지. 안대훈 기자

이런 상황은 최근 ‘군항제 공무원 차출’을 두고 공직사회에서 표출된 갈등의 연장선이다. 앞서 “근무시간 대비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일부 공무원이 축제 동원에 반발하자, 다른 한쪽에선 공무원이 사명감 없이 보상만 요구한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창원시, 군항제 2241명 동원

진해군항제가 열린 26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역 공원. [연합뉴스]

진해군항제가 열린 26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역 공원. [연합뉴스]

창원시에 따르면 지난 25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열리는 진해군항제 기간(주말 4일·평일 6일)에 시 공무원 2241명이 동원된다. 하루 220여명이 투입되는 셈이다. 이들 공무원은 원칙상 축제 기간 중 하루만 투입되며, 전반조(오전 9시~오후 6시) 또는 후반조(오후 3시~오후 10시)로 나눠 근무한다. 축제에 차출된 공무원은 대부분 6급 이하로, 차량통제·주차관리·관광안내·셔틀버스 운행 등을 한다. 불법 주정차나 노점상 단속도 업무다.

“합당한 보상 안 해줘”

최근 창원시공무원노동조합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해 진해군항제 공무원 동원 관련 불만 글이 올라와 있다. [창원시공무원노동조합 홈페이지 캡처]

최근 창원시공무원노동조합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해 진해군항제 공무원 동원 관련 불만 글이 올라와 있다. [창원시공무원노동조합 홈페이지 캡처]

이와 관련, 최근 창원시공무원노동조합 게시판에는 “쥐어짤 줄만 알지 합당한 보상은 해줄 줄 모른다” “시간 뺏기고 돈은 제대로 안 챙겨주고 사무실 일은 누가 해주나” 등 글이 올라왔다. 20~30대 젊은 공무원(MZ세대)을 중심으로 “축제 업무까지 도맡느라 본래 해야 할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여기에 반쪽 보상제는 기름을 부었다. 공무원은 축제현장에서 하루 8시간을 일한다. 하지만 규정상 초과근무는 하루 최대 4시간까지 인정된다. 이에 “무임금 차출이 문제” “공짜노동” 등 불만이 나온다.

이날 군항제 현장에서 만난 20대 공무원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내가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게 너무 당연하다 생각한다”며 “주말 근무자는 대휴(대체휴무)를 준다고 하지만, 그걸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공직자 어느 정도 희생 감내해야”

진해군항제가 한창인 26일 오후 경남 창원 여좌천에서 창원시 공무원들이 축제 관광객이 나무데크 아래 빠뜨린 카메라 부속품을 찾고 있다. 안대훈 기자

진해군항제가 한창인 26일 오후 경남 창원 여좌천에서 창원시 공무원들이 축제 관광객이 나무데크 아래 빠뜨린 카메라 부속품을 찾고 있다. 안대훈 기자

반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창원시 공무원도 많다. 한 간부공무원은 “과거에 수당이 있었나, 특별휴가가 있었나.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엔 공무원이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 헌장에도 ‘국민에게 봉사한다’고 돼 있다. 사명감 없이 (공무원으로) 일하기 어렵다”며 “'까라면 까'식의 공직문화가 바뀌는 것은 공감하지만 이번엔 (직원들이) 지나친 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창원시 한 차석(6급) 공무원은 “나이 든 분들은 해오던 일이어서 그러려니 하는데, 젊은 분들은 거부감이 큰 것 같다”며 “공직자로서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보는데, 무조건 보상과 연결지어서만 생각하니 대화가 잘 안 된다”고 했다.

특별휴가 검토…창원시 진화 나섰지만

진해군항제 전야제가 열린 지난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일대. [연합뉴스]

진해군항제 전야제가 열린 지난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일대. [연합뉴스]

창원시는 재난관리기금(5000만원)을 써 교통통제 등 시민과 마찰이 잦은 업무에 전문인력 300여명을 투입했다. 이 때문에 2019년 군항제 당시 차출 인원(2712명)보다 올해 471명 정도 줄었다고 전했다.

홍남표 창원시장은 축제 동원 직원은 특별휴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했다. 주말 축제 동원 업무로 인한 대체휴가 이외 별도 휴가다.

하지만 반발하는 직원이 가장 원하는 초과수당은 충족시켜 주기 어렵다. 창원시 관계자는 “특별휴가는 자치단체장 권한으로 보낼 수 있지만, 초과수당 지급은 법적인 문제여서 방법이 없다”고 난색을 보였다.

“사명감 중요하지만, 헌신만큼 대우해줘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공무원 보수 관련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공무원 보수 1.7% 인상안을 규탄하고 있다. [뉴스1]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공무원 보수 관련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공무원 보수 1.7% 인상안을 규탄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는 이런 갈등이 MZ세대 공무원 증가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으로 진단했다.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 사회가 MZ세대를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제 위계질서나 사명감에만 의존해 공무원 조직을 운영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송 교수는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사명감은 공직자에게 꼭 필요한 요소”라며 “다만, 봉급 인상률이 1%대로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공무원 처우가 예전만 못한 상황이어서 대책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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