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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우주복은 우주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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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혹독한 외부 환경에 맞춘 옷 중에는 방열복과 방한복·방사선방호복·잠수복·우주복 등이 있다. 방열복은 열에 강한 아라미드 섬유에 알루미늄을 특수 코팅한 겉감, 방수천과 투습천, 단열 내피로 이뤄진다. 늘어나지도 않고, 가위로 끊어지지도 않고, 내열성·강성·탄성이 탁월해 항공우주와 군용으로 쓴다. 고온과 뜨거운 수증기, 유해 물질에는 물론 불꽃이 튀어도 끄떡없다. 미국 소방관은 헬멧과 후드·호흡기·방화복·장갑·부츠·무전기를 착용하는데, 총 중량이 27㎏이라 일반인이 입으면 그냥 서 있기도 힘들다.

그런가 하면 남극의 장보고기지에서는 최저 영하 40도에 맞춘 방한복을 입고, 내륙기지에서는 최저 영하 80도 환경에 맞춘 방한복을 입는다. 그래서 방한복은 침낭 하나를 통째로 입는 거나 다름없다. 심해 잠수복은 온몸을 금속과 첨단소재로 감싸 차라리 잠수정에 가깝다. 두껍고 무거운, 금속 장비로 이뤄진 이 철갑옷은 그래서 단순 작업에나 쓴다. 게다가 물속을 내려가면 수압이 급격히 올라가 잠수함처럼 튼튼해야 한다.

300도 온도차 극한상황 견뎌야
미, 우주복 개발 1조4000억 투자
소방관 순직 막는 기술될 수도
통합 연구개발 전략 수립 필요

미국 우주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의 수석 엔지니어 짐 스타인(왼쪽)이 지난 15일 휴스턴에서 우주선 외부 활동을 위한 우주복 시제품을 시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우주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의 수석 엔지니어 짐 스타인(왼쪽)이 지난 15일 휴스턴에서 우주선 외부 활동을 위한 우주복 시제품을 시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주복은 그보다 훨씬 정교하다. 대기권 밖은 진공인 데다 태양 방향에 따라 영하 233도에서 영상 121도를 오르내린다. 우주선 안팎에서 입는 옷이 따로 있는데, 선내 활동과 선외 활동을 할 때 착용하는 우주복이 그것이다. 공기가 가득 채워져 있는 우주선 안에서 입는 선내복은 가볍고 편안하지만, 선외복은 두껍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주복은 안전할 뿐 아니라 입고 벗기가 쉬우며 편안해야 한다. 앉았다 일어설 때, 물건을 들고 팔다리를 구부릴 때, 힘이 덜 들게 만든다. 그렇게 하더라도 진공에서는 금세 뻣뻣해진다. 이 때문에 내부 압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부드럽게 움직이는 등 까다로운 요구에 맞춰야만 한다. 이런 조건은 고고도 정찰 비행에 쓰는 가압복에도 적용된다. 우주복은 그런 특수 임무를 띤 파일럿들이 입던 특수복의 손자뻘이다.

우주복은 내부 압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 대기의 78%가 질소라 우주복 안에는 산소와 함께 질소를 충전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의 몸은 질소를 쓰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주복 안은 1기압보다 낮다. 이런 저압 상태에 들어가기 전, 즉 옷을 착용하기 전에 우주인은 순수한 산소를 호흡한다. 감압병(DCS)을 막기 위해서다. DCS는 감압 중 신체 조직에 거품이 생기는 증상이다. 깊이 잠수하거나 나올 때, 혹은 무가압으로 비행할 때 발생한다. 우주복은 산소 공급은 물론, 사람이 내뱉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능도 갖추어야 한다. 휴대용 생명유지장치가 그 일을 맡는다.

영화 ‘마션’에서 승무원이 입는 실내복엔 파이프 같은 게 보인다. 배우들의 체온조절을 위해 넣은 수냉식 냉각기로 실제 우주복에도 들어간다. 지구에서는 대류와 복사, 전도를 통해 열이 전달되지만, 우주에서는 복사와 전도만 일어난다. 지구 궤도 상에서 직사광선을 쐬다가 그림자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섭씨 300도가 떨어진다. 우주복은 그런 급격한 변화에 끄떡없게 단열 처리된다. 동료나 지상국과 교신을 위해 생명유지장치에 연결된 통신장비는 물론 용변 처리 장치도 있어야 한다. 4시간이나 발사를 기다린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 앨런 셰퍼드가 우주복에 실례를 범한 일이나, 아폴로 10호 선내에 대변이 둥둥 떠다닌 사건은 역사가 됐다. 우주인들은 여전히 기저귀를 찬다. 대안이 없어서다.

SF 영화와 달리 사람은 우주에서 잠깐 맨몸으로 버틸 수 있다. 몸은 그러한 조건에서 두 배로 불어난다. 영화 ‘토털 리콜’에 나오는 것, 마냥 풍선이 터질 것 같은 빵빵한 상태라기보다는 보디빌더같이 변한다. 진공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의 의식은 산소가 극도로 결핍된 상태에서 길게는 15초간 유지된다고 한다. 열복사로 체액이 천천히 증발하면서 체온이 떨어진다. 드라이아이스에 담근 장미꽃처럼 그렇게 금세 인체가 얼어붙진 않는다.  또한 체내 압력이 한동안 유지돼 SF 소설에서처럼 피가 부글부글 끓지도 않는다.

자외선과 방사선도 골치다. 지구 대기는 몸에 해로운 전자기파와 입자들을 차단해 준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무방비다. 게다가 작게는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소(微小) 운석이 총알의 10배 속도로 우주복에 구멍을 낼 수 있다. 우주복 바깥에 방탄층을 대는 이유다. 초신성과 블랙홀에서 튀어나오는 고에너지 입자는 체내의 물과 반응해 DNA를 깨뜨리고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주복엔 층층이 복합소재를 댄다. 우주복은 우주선이다.

달·화성 탐사 목표에도 우주복 개발이 포함됐다. NASA는 최근 우주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에 의뢰해 만든, 달 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 우주인들이 입고 갈 최신형 우주복(AxEMU)의 시제품을 공개했다. NASA는 또한 외골격 우주복 개발에 1조4000억원을 투입한다. 남의 나라 얘기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그 기술은 미래에 우리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순직을 막게 될지도 모른다. 방열복·심해잠수복·방사선방호복·방한복·외골격로봇과 우주복 사이에는 공통 기술이 있다. 우리 정부, 즉 과기정통부·산업통상자원부·행정안전부·해양수산부·보건복지부·국방부에 이에 관한 통합 연구개발(R&D) 전략 수립을 제안하고 싶다. 아르헨티나는 12년 전, 남극에서 화성 탐사용 우주복 NDX-1의 성능을 검증했다. 우리도 2045년 화성에 태극기를 꽂는 게 사람인지, 로봇인지 알아야 개발을 검토할 텐데, 알맹이 없는 우주청 논란만 뜨겁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