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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노무현을 기억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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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2002년 16대 대선에서 투표권이 없던 나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2009년 5월 23일 그의 서거를 접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대학 선후배와 황망한 뉴스를 공유했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노 전 대통령만큼 세대와 계층에게 다르게 기억되는 대통령도 드물다. 그를 청와대로 이끈 노사모와, 유시민씨가 쓴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운명』을 읽고 검찰을 증오하는 이들과, 노무현 정부 시절 폭등한 집값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잃은 서민들과,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추진 등에 반발한 진보 인사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2003년 6월 일본 TV에 출연해 일본 국민과 대화를 나누던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의 모습. [중앙포토]

2003년 6월 일본 TV에 출연해 일본 국민과 대화를 나누던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의 모습. [중앙포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 투쟁에 또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검사장)이다. 그는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서 “어느 쪽이 진실인가”라며 당시 수사 내용을 여과 없이 공개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 가장 큰 도덕적 타격을 입힌 ‘논두렁 시계’ 보도에 대해선 검찰이 아닌 국정원의 작업이라 주장하면서도,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는 노 전 대통령의 비공개 면담 발언을 공개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수사한 우병우 당시 대검 중수1과장에게 진술한 내용도 책에 포함됐다. 이 전 검사장은 회고록 말미에 “기억이 불분명한 것을 바로잡고 보충해 준 우병우 변호사에게 감사하다”고 썼다. 우 변호사는 내년 총선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윤석열 대통령을 취재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사를 여럿 쓰게 됐다. 윤 대통령은 검사 때부터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했다. 지난해 제주 해군기지가 보이는 강정마을을 찾아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고뇌에 찬 결단을 하셨다”며 눈물을 삼켰다.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해 과거사 질문을 받고 양국의 미래를 위해 “답변은 제 가슴속에 묻어두겠다”고 말한 것도 최근에서야 기사를 쓰며 알게 됐다. 이 전 검사장은 2009년 검찰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진실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도 일부분일 뿐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 뒤 그의 경제보좌관이었던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는 본지에 기고한 ‘제자리로 돌아가라’에서 “이제 우리는 자신 속의 감정과 입장을 떠나 그의 시대와 그가 하고 간 일에 대해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그것이 남기고 있는 의미에 대해 정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고 썼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일로 “각자가 지켜야 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꼽았다. 검사의 금기를 깨고 수사 내용을 공개한 이 전 검사장을 보며 곱씹게 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