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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담보 없는 신용대출 연체 사상 최고…시급한 저축은행 관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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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리인상기에 주택담보대출 연체율 증가 두 자릿수

자산보다 빚 많은 고위험 가구도 두 배, 부실 우려

가계부채가 심상치 않다. 한국 경제의 뇌관이라는 경고가 나온 지 이미 오래지만 특히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2021년 8월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대출금리는 1년 반 만에 0.5%에서 3.5%로 크게 올라 연체율이 치솟고 있다. 또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고위험 가구 역시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대출금리가 딱 기준금리만큼만 올랐다 해도 전체 대출자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이자만 이미 수십조원 이상 불어난 데 따른 후유증이다.

26일 국회 양정숙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주요 금융회사(5대 시중은행·저축은행·보험·여신전문금융회사)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연체액 총액은 2021년 말 대비 54.7% 늘어난 1조20억원을 기록했다. 부동산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담보가 없어 손실을 금융권이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신용대출은 더 문제다. 신용대출 잔액은 줄었지만 연체액은 오히려 크게 늘어 사상 처음으로 2조원대를 넘어섰다. 시중은행이 위기관리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신용대출을 줄이는 와중에도 저축은행은 거꾸로 신용대출을 늘리면서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상황보고서에선 보유 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빚을 갚기 어려운 고위험 가구가 61만5000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했다. 1년 새 2배 늘어난 수치다. 또 전체 가계대출자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40.6%로, 2018년(40.4%)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소득의 40%를 원리금 상환에 쓴다는 의미다. 심지어 추가로 빚을 더 내야 원리금을 낼 수 있는 DSR 100% 초과 대출자 비중도 8.9%나 됐다. 한은은 “가계 전반의 부실 위험은 낮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강도 긴축 영향으로 실물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각종 숫자는 위기의 경보음을 내고 있다. 한국의 금융불안지수(FSI)는 지난달 21.8로 집계돼 벌써 5개월째 위기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FSI는 금융안정에 영향을 끼치는 실물·금융 지표를 바탕으로 산출하는데, 금리 인상과 부동산값 하락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커진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SVB 사태와 같은 대외 악재가 덮치면 국내 금융시스템은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다. 뻔히 보이는 위기라고 안심할 게 아니라 오히려 예상 가능한 위험 요인을 선제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촘촘한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충당금과 자본 확충 등 금융사 건전성의 확보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