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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뉴스타트’ 중단 이어 벨라루스에 핵무기 전진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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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친러시아 국가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다고 지난 25일(현지시간)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전진 배치한다는 의미다. 지난달 28일 미국과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을 공식적으로 중단한 데 이어 미국과 핵 경쟁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영 로시야-24 TV 인터뷰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오랫동안 러시아에 전술핵무기 배치를 요청했다”며 러시아·벨라루스 간 전술핵무기 배치 합의 사실을 공표했다. 이어 “이미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 체계를 제공했다”며 “4월 3일부터 관련 훈련을 시작하고, 7월 1일에는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용 특수 저장고를 완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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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어기지 않으면서 미국과 똑같이 하기로 벨라루스와 합의했다. 핵무기를 벨라루스로 이전하는 게 아니라 미국처럼 배치하는 것”이라며 “핵통제권은 러시아가 가진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유럽 내 나토 회원국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다. 미국은 독일·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터키의 6개 공군기지에 150~200기의 B61 계열 전술핵폭기를 배치하고 있다. 유사시에는 미국이 나토와 협의해 F-16이나 토네이도 전투기 등에 장착해 발사할 수 있다. 미국이 지난해 말부터 배치하기 시작한 개량형(B61-12)의 경우 정밀도가 향상된 저위력 전술핵무기로, 적의 방공망을 따돌리는 F-35 스텔스 전투기에도 장착할 수 있다.

러시아는 1996년까지 소련 3개국(우크라이나·벨라루스·카자흐스탄)에 배치됐던 핵무기를 완전히 철수한 이후 러시아 영토 내에만 핵무기를 보관·배치해 왔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미국보다 더 많은 전술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 핵과학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 총 5977발 중 약 32%(1912발)가 전술핵무기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배치한 이스칸데르처럼 미국이 폐기한 중·단거리 지대지 핵전력도 갖고 있다. 상호 핵 사찰과 정보 공유를 약속한 뉴스타트 중단으로 미국은 앞으로 러시아의 핵전력 증강에 대해선 깜깜이 상태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이번 조치 배경의 하나로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영국의 열화우라늄탄 지원 문제를 들었다. 열화우라늄탄은 고열로 두꺼운 장갑을 뚫는 등 대전차 공격에 효과적인 무기다. 하지만 핵폐기물을 이용해 제조하는 만큼 방사능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 등이 제기돼 왔다.

에이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전략적 핵 태세를 조정할 이유도,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도 보지 못했다”며 “우리는 나토 동맹의 집단 방어에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차 생산량 부족 등 러시아군의 군수 보급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맞서 러시아가 전술핵무기 전진 배치로 맞불을 놨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러시아 입장에선 재래식 전력의 한계를 이 같은 상징적인 조치로 만회하려는 속셈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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