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 LVMH 아르노 회장 일가...옆엔 AI로 '짝퉁' 잡는 한국 스타트업이 [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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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세계 럭셔리업계의 거대공룡 루이비통모엣헤네시(이하 LVMH) 그룹의 사내 행사가 열렸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 일가와 한국 LVMH 조현욱 회장, 로마에서 날라온 펜디의 세르주 브륀슈위그 회장 등 LVMH 그룹 글로벌 임원과 한국 지사장들이 참석한 행사였다. 이날은 한국에서의 향후 LVMH 거점 확보를 위해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한 아르노 회장의 일정 첫날로, 아르노 회장 옆에는 얼마 전 디올 CEO 겸 회장이 된 장녀 델핀 아르노와 티파니 부사장인 차남 알렉상드르 아르노가 함께했다.

지난 20일 방한한 LVMH 그룹 아르노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이도경 마크비전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아르노 회장의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사람은 차남 알레상드르 아르노 티파니 부사장이다. 왼쪽 사진은 조현욱 LVMH 코리아 회장이 아르노 회장에게 이 대표를 소개하는 모습이다. 사진 마크비전

지난 20일 방한한 LVMH 그룹 아르노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이도경 마크비전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아르노 회장의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사람은 차남 알레상드르 아르노 티파니 부사장이다. 왼쪽 사진은 조현욱 LVMH 코리아 회장이 아르노 회장에게 이 대표를 소개하는 모습이다. 사진 마크비전

흥미로운 것은 이 자리에 한국 스타트업 대표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지난해 6월 '2022 LVMH 이노베이션 어워드'에 참가했던 IT 기반 스타트업 대표들. 네 회사의 대표가 각자 3~5분 정도 기술력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발표했는데, 마지막은 어워드의 데이터&인공지능 부문에서 우승한 마크비전의 이도경 대표가 장식했다.

위조품 문제 해결, AI에 기대를 걸다
마크비전은 인공 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만든 스타트업이다. 최근 세계는 대화형 인공지능 메신저 '챗 GPT'의 등장에 인공지능이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상이 현실로 한 걸음 다가왔다는 생각에 들썩이는 중이다. 명품업계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는 마찬가지였다.

AI가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는 가품(위조품)의 이미지 인식 기술을 통해 찾아내는 시연 이미지. 사진 마크비전

AI가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는 가품(위조품)의 이미지 인식 기술을 통해 찾아내는 시연 이미지. 사진 마크비전

이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인공지능을 통한 '가품(위조품)' 관리다. 관렵 업계가 추산하는 세계 가품 시장 규모는 2000조원. 특히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과 천문학적 숫자의 마케팅 비용이 들어가는 명품의 경우, 가품의 제조·유통은 심각한 문제다. 최근 LVMH 그룹 소속의 럭셔리 브랜드 루이 비통, 디올, 티파니, 불가리는 AI 기반의 가품 판매자 색출과 제거에 나섰다.
AI는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는 가품을 찾아내고, 그 판매자와 판매 플랫폼에 경고 및 판매 금지 처분을 요청한다. 종전엔 사람이 하던 일인데, 이를 인공지능이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하니 효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간다. 이 기술을 개발한 것이 바로 마크비전. 아르노 일가의 LVMH 그룹 행사에 이 대표가 있었던 이유다. 이 대표는 미 코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하버드 경제학부 출신의 이인섭 대표와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마크비전을 창업했다. 마크비전의 최고사업책임자(CBO)로 재직하다, 지난해 10월 한국지사를 설립하며 마크비전코리아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이도경 대표는 마크비전 공동창립자 겸 마크비전코리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 마크비전

이도경 대표는 마크비전 공동창립자 겸 마크비전코리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 마크비전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2 LVMH 이노베이션 어워드'의 수상자들. 맨 왼쪽에서 5번째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도경 마크비전코리아 대표다. 사진 LVMH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2 LVMH 이노베이션 어워드'의 수상자들. 맨 왼쪽에서 5번째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도경 마크비전코리아 대표다. 사진 LVMH

이들은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위조상품과 불법 콘텐트를 찾아내고 차단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온라인에 올라온 이미지는 AI가, 제목·제품설명 등 글자는 머신러닝 기술이 가품 여부를 판단하고 잡아낸다. 이렇게 찾아낸 가품 정보는 이를 판매하는 판매자와 유통 플랫폼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까지 자동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마크비전이 탐지한 가품은 지난해 총 2100만건을 넘어섰다.
"예전엔 위조품을 사람이 일일이 골라내고, 그 결과를 변호사나 변리사에게 보내 경고장을 쓰는 형식으로 관리했어요. 이 과정을 AI를 이용해 자동화할 수 있는 사스(SaaS,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서비스의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던 게, 그때가 코로나 19가 터진 직후였어요. 온라인 시장 활성화로 위조품 유통이 브랜드에 위협적인 문제로 떠오르니 우리 서비스가 관심을 받기 시작했어요."

명품에 마크비전 기술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21년 3월 티파니가 가품 색출을 의뢰하면서부터다. 지금 티파니는 마크비전을 직접 찾아 카카오스토리에서 유통되는 가품을 찾아내 관리해주길 주문했다. 결과에 만족한 티파니는 이후 마크비전에 한국 시장 전체 이커머스와 SNS에서의 가품 색출&관리를 맡겼다. 이후 같은 그룹 소속인 루이 비통과 불가리, 디올까지 이들의 고객사가 됐다.
기술을 들여다 보면, AI와 머신러닝 기술이 동시에 작용하며 가품을 잡아낸다. AI는 브랜드 본사가 제공한 제품과 디테일 이미지들을 데이터화해 이와 다른 점이 발견되면 가품으로 판정한다. 머신러닝 기술은 가품 판매를 위해 판매자가 작성한 제목, 제품 상세 설명 등에 적용된다. 글자를 인식하고 의미를 분석해 브랜드 본사가 운영하거나 허용하고 있는 사이트나 이커머스 플랫폼 외의 곳에서 같은 내용이 발견되면 이를 감지하고 위조의 단서를 잡아낸다.

글로벌 명품 관심 높지만, 시작은 한국 브랜드

국내 패션 브랜드 '아크메 드 라비'는 마크비전의 AI기술을 통해 7억 달러 이상의 위조품 유통을 막았다.

국내 패션 브랜드 '아크메 드 라비'는 마크비전의 AI기술을 통해 7억 달러 이상의 위조품 유통을 막았다.

마크비전의 AI 기반 서비스는 처음부터 해외 명품 브랜드를 타깃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국내 패션회사가 먼저였다. 젠틀몬스터, 디스이즈네버댓, 마르헨제이, 아크메 드 라비처럼 위조품으로 골치를 썩는 패션 브랜드들이 마크비전의 첫 고객이 됐다.
"이 브랜드들 대부분이 K팝 아이돌 등 국내 유명 아티스트를 모델로 기용해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었어요. 인기 반작용으로 동남아, 중국에서 엄청난 양의 위조품이 만들어지고 팔렸죠. 하지만 회사 규모가 작아 자체적으로 위조품에 대응하기 힘들었던 거예요. 이때 우리 서비스가 도움을 줄 수 있었고, 해외에도 이름이 알려지게 됐어요."

디지털 콘텐트 저작권 지키는 AI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저작권 무단 도용 검색 이미지. AI가 유미와 세포들의 얼굴을 이미지 인식 데이터(녹색 사각형) 기억하고 무단으로 이를 사용한 콘텐트나 굿즈 등을 잡아낸다. 사진 마크비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저작권 무단 도용 검색 이미지. AI가 유미와 세포들의 얼굴을 이미지 인식 데이터(녹색 사각형) 기억하고 무단으로 이를 사용한 콘텐트나 굿즈 등을 잡아낸다. 사진 마크비전

마크비전의 AI 기술은 디지털 세상에서 벌어지는 저작권 전쟁의 무기로도 활용된다. 공들여 만든 콘텐트를 무분별하게 퍼가 게시하거나 이를 무단으로 도용해 굿즈나 또 다른 콘텐트로 만들어내는 것을 찾아내는 것. 실제 마크비전의 고객사 중 20%가 유명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네이버웹툰·레진코믹스(웹툰)·포켓몬코리아 등 콘텐트 업체다. 이 대표는 "시장에 괜찮은 콘텐트가 나오면 이를 카피해 쉽게 만들어 판다. 이에 맞서는 방법은 소송 외엔 없었는데, 거기에 드는 비용과 시간, 노력에 비해 성과가 크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 성장하고 있는 리셀(재판매) 시장에서도 마크비전의 AI 기술은 유용하게 쓰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브랜드와 리셀 플랫폼 간의 정품 논란은 두 곳 모두 해결하고 싶은 문제인데, 지금으로써는 검수자 개인의 판별능력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브랜드가 자기 브랜드를 지킬 수 있는 최고로 강력한 장치를 만든다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플랫폼에는 건전한 유통, 쇼핑 문화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또 다른 사명감을 공유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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