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어의 법칙'으로 전세계 반도체 시장 재패한 고든 무어 별세

중앙일보

입력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 인텔의 창립자 고든 무어가 2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AP=연합뉴스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 인텔의 창립자 고든 무어가 2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AP=연합뉴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인텔의 공동 창립자이자 '반도체 성능이 2년마다 2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무어의 법칙을 제시했던 고든 무어가 별세했다. 94세.

뉴욕타임스(NYT) 등은 24일(현지시간) 무어가 이날 미국 하와이에 있는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인텔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항상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던 훌륭한 과학자이자 뛰어난 사업가였다"고 그를 추모했다.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내용의 '무어의 법칙'을 나타낸 그래프. 무어는 자신이 설립한 인텔을 통해 반도체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그의 이론을 증명해냈다. 사진 브리태니커 홈페이지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내용의 '무어의 법칙'을 나타낸 그래프. 무어는 자신이 설립한 인텔을 통해 반도체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그의 이론을 증명해냈다. 사진 브리태니커 홈페이지

과학자 무어는 36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어의 법칙'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65년 과학 저널 '일렉트로닉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반도체 실리콘 칩에 배치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반도체 소자)의 수가 매년 두 배로 증가해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도체 집적화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제조 원가는 줄어들어 컴퓨터뿐 아니라 자동차·가전제품 등 일상생활 속 다양한 물건에 반도체가 활용될 것이라는 경험적 추측이었다.

그의 이론은 발표 당시엔 허무맹랑한 추측으로 치부됐지만,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인 카버 미드가 '법칙'으로 명명하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75년 무어는 주기를 1년에서 2년으로 수정했다. 발표 뒤 약 30년 동안 그의 예측이 대체로 맞아떨어지면서 오늘날까지도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R&D) 계획을 세우는 데 중요한 지침으로 자리 잡았다. NYT는 "무어의 법칙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제트기부터 노트북·체중계·토스터 등 반도체가 포함된 모든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인텔 창업자 트로이카'로 불렸던 고든 무어(맨 오른쪽)와 로버트 노이스(가운데), 앤디 그로브. 사진 고든&베티 무어 재단

'인텔 창업자 트로이카'로 불렸던 고든 무어(맨 오른쪽)와 로버트 노이스(가운데), 앤디 그로브. 사진 고든&베티 무어 재단

무어가 또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은 건 68년 로버트 노이스와 반도체 기업 '인텔'을 설립하면서였다. 그는 당시 500달러(약 65만원)를 투자해 실리콘밸리 산타클라라 지역에 회사를 세웠다. 그는 반도체 성능은 높이되 비용은 줄이는 연구·개발에 총력을 다했고, 80년대  NEC·도시바·히타치 등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NYT는 "90년대 후반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컴퓨터의 80%에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탑재됐다"며 "이후 인텔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반도체 회사가 됐다"고 전했다. 무어는 79년 이사회 의장이자 최고 경영자(CEO) 자리에 올랐고, 97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2002년 기술 혁신을 이뤄낸 공을 인정받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은퇴한 뒤엔 환경·과학·교육 분야에 힘썼다. 그는 2001년 인텔 주식 1억 7500만 주를 기부해 부인과 함께 '고든&베티 무어' 재단을 세웠다. 당시 재단은 캘리포니아 공대에 6억 달러(약 7800억원)를 기부했는데, 단일 교육기관 기준 사상 최고 기부액이었다. 현재까지 재단의 누적 기부금은 51억 달러(약 6조 63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고든 무어(왼쪽)는 은퇴 뒤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고 환경·과학·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사진 고든&베티 무어 재단

고든 무어(왼쪽)는 은퇴 뒤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고 환경·과학·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사진 고든&베티 무어 재단

192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무어는 산호세 주립대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에서 공부했다.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화학·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 졸업 뒤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반도체 업계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지난해 포브스는 그의 순 자산이 72억 달러(약 9조 3600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그는 맞춤 양복 대신 해진 셔츠를 입는 등 소탈한 모습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NYT는 "그는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사무실 책상에 저렴한 낚시용품을 뒀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