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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지 말고, 도전하라” 이어령 연구 이어지길…日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중앙일보

입력

11년만의 도쿄(東京) 방문이 힘에 부쳤던 모양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위경련에 한 달 전에 했던 저녁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꼼짝없이 하룻저녁을 호텔 방에 누워있었다고 했다. 인터뷰를 고사할 만도 했지만, 강인숙(90·사진) 영인문학관장은 아무 일 없던 듯 곱게 차려입고 지난 24일 약속 장소에 나왔다. 강 관장은 “멀리서도 잊지 않아 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라고 했다.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인터뷰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아내이자 평생의 문학 동지로, 이 전 장관 1주기를 맞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 특별전시회 개막식 참석을 위해 일본을 찾은 강 관장을 만났다.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참석한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참석한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자리에 앉은 강 관장이 봄꽃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저는 봄에 떠난 가족 생각에 지난 1년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생활해왔거든요. 그런데 도쿄에 꽃이 굉장히 예쁘게 피었네요.” 사랑하는 딸과 65년을 함께 한 이 전 장관이 떠난 봄. 강 관장은 이 봄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하질 못한다고 했다. “꽃 피는 게 싫다”고 할 정도로 봄은 여전히 그에게 고통의 시간이다.

그런데도 거동이 불편한 강 관장이 기꺼이 집 밖을 나선 건 순전히 전시회 때문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하루에 천 리씩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일 년이면 얼마나 먼 거리를 갔을까요. 그런데도 이 먼 곳에서 기억해주시니 감사하지요.”

이 전 장관은 1981년부터 1년간 도쿄대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분재와 도시락, 쥘부채 등 문화적 측면에서 일본을 분석한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년)을 냈다. 이 책은 당시 일본 NHK가 정규 뉴스 시간에 15분을 들여 보도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이 전 장관의 책들은 일본어로도 속속 번역돼 일본에서도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전시된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서적.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전시된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서적.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강 관장은 지난해 2월 이 전 장관의 별세 후 두문불출, 이어령 전집 원고 작업에 몰두했다. 7년 간의 암 투병 속에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이 전 장관은 자신의 전집 원고 80%를 마쳐둔 상태였다. 이 전 장관은 생전 시와 소설을 비롯해 160여 권의 저작을 남겼는데, 전집의 나머지 20%의 원고 작업을 강 관장이 맡은 셈이다.

살을 맞대고 살아온 강 관장이 바라본 ‘이어령의 정신’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앉지 말고, 도전하라’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 관장은 “이어령 선생은 새것에 대한 관심 때문에 늘 새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면서 “나와는 달리 도전하는 더듬이가 있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문학동지로서 보내는 극찬이다.

‘남편 이어령’ 얘기가 나오자 강 관장 목소리가 빨라졌다. “이어령은 입시생처럼 평생을 산 사람”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2~3시까지 글을 썼는데, 아이들조차 ‘아우, 난 저렇게는 안 살아, 일생을 어떻게 저렇게 살아?’라고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최근 이어령 전집 출간이 마무리돼 “이제 내 글을 쓰겠다”면서도 강 관장은 컴퓨터 7대에 나뉘어 담겨있는 ‘이어령 글’ 걱정을 했다. “방대한 글과 자료를 분석하는 데 오래 걸리겠지만, 앞으로 사람들이 잊지 않고 이어령 연구를 계속해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참석한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참석한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이날 막을 연 전시회엔 강 관장이 모아온 이 전 장관의 육필 원고와 필기구, 사진과 저서 100여 점이 전시됐다.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다”고 했던 생전 바람처럼 다양했던 이 전 장관의 일대기도 담았다.

신진 문학인 등용을 위해 1972년 창간한『문학사상』이 작가들의 얼굴 표지를 싣게 된 이야기부터 88서울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을 연출했던 일,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연구원을 발족시켰던 이야기까지 볼 수 있다. 특별전은 다음 달 25일까지 한 달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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