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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설
미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팅을 시작한 2022년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은행 종목이 관심주로 떠올랐습니다. 고금리 시대엔 현대 경제의 대표적인 채권자인 시중은행이 수혜를 누릴 수 있다는 ‘소박한 기대심리’ 때문이었습니다.
고금리 복음은 두 가지입니다. 인플레를 잡아 시중은행이 받을 돈의 미래 가치 하락을 막아줍니다. 대출 금리를 오르게 해 예금과 대출 금리 사이 차이를 키워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 흘렀습니다. 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제로금리나 다름없는 0.25%에서 5%(상한 기준)까지 가파르게 끌어올렸습니다. 통화긴축 초기 미 시중은행 순이익이 늘어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지역 중견 은행이 파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접적인 파장이지만 대서양 건너 유럽 대륙에선 크레디트스위스가 땡처리됐습니다. 독일 도이체방크가 불신의 늪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했습니다.
사태의 중심에 금리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금리라는 양날의 칼이 시중은행 내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미국의 파산은행 대차대조표를 현미경으로 살펴봅니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지난 3월 21~22일 열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회의에서 제롬 파월 의장 등의 앞에 놓인 카드는 두 개였다. 인플레이션 vs 은행 위기. 파월 등이 뽑아 든 카드는 인플레이션이었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5%에 이르게 했다. 추가 인상 가능성도 내비쳤다.
예상대로다. “중앙은행가들은 ‘발등의 불’과 ‘잠재 위협’ 가운데 발등의 불을 먼저 끄는 성향을 보인다”고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칼럼니스트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여기서 발등의 불은 인플레이션이다. 잠재 위협은 은행 위기다. “불행하게도 중앙은행가의 선택과 경제 현실 사이에는 시차가 발생한다”고 울프는 덧붙였다. 중앙은행가들이 발등의 불을 끄는 사이 잠재 위협이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얘기다.

고민하는 표정의 제롬 파월 미 Fed 의장. AP=연합뉴스
중앙은행가가 한 발 늦다면,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는 잠재 위협에 선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대응의 시작은 “현재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월가의 교장선생님’인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츠 회장이 말했다. 2022년 6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다.
美 은행서 130조 빠져나가
위치 파악의 단서는 파월이 제시했다. 그는 3월 22일 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금융 조건이 빡빡해지고 있다(Financial conditions are tightening)”고 진단했다. 금리가 오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중은행 등이 대출 조건 등을 까다롭게 심사하는 단계다. 신용도 등을 엄격하게 적용해 대출 등에 따른 리스크를 줄인다.
은행파산을 목격한 예금주들이 돈을 인출하는 마당에 시중은행이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돈을 꿔줄 수는 없다. Fed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알려진 3월15일이 들어 있는 셋째 주에 예금 984억 달러(약 130조원)가 인출돼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