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 기억하는 가죽점퍼 '원조 형님'…최강 특검, 박영수 흥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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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다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가짜 수산업자에게서 포르쉐 렌터카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이용하고, 86만원 어치 수산물을 선물로 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기소된 지 불과 넉달만이다. 이번에는 이른바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과 관련해서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이 2014년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장동 민간사업자 컨소시엄에 어떤 금융사를 포함시키고 뺄지에 힘을 쓰고 뒷돈을 받았거나 받기로 약속했는지 의심하고 있다. 박 전 특검의 딸이 대장동개발 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에 3년가량 근무하며 11억원을 대여금 명목으로 받았고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받아 8억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벌어들이는 등 대장동 업자들과 연결된 정황이 드러나 있는 상태다. 박 전 특검의 인척인 이모씨가 대장동 아파트 분양대행 용역을 독식하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한 100억원대 돈거래의 성격도 검찰이 규명해야할 의혹의 일부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서울고검장,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내고,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을 맡아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린 전무후무한 경력을 가진 그는 이제 한 사건의 피고인이자 또 다른 사건의 주요 수사대상으로 전락했다.

박영수 전 특검이 2016년 11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강남에서 국정농단 사태 수사 특별검사로 임명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오종택 기자

박영수 전 특검이 2016년 11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강남에서 국정농단 사태 수사 특별검사로 임명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오종택 기자

김대중 정부 들어 승승장구 

 박 전 특검은 1983년 9월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수원지검 강력부장과 대검 강력과장을 맡으면서 조직폭력배를 수사하는 강력통으로 이력을 쌓았다.

전기는 1998년 3월 서울지검 강력부장을 맡으면서 찾아왔다. 당시 검찰은 학교폭력과 학교주변 윤락업소를 없애는 캠페인인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이때 성과를 내면서 윗선의 눈에 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의 박 전 특검을 기억하는 이들은 지금도 “그땐 정말 열심히 일했다”(전직 검찰 간부)고 기억한다. 박 전 특검은 이후 공안검사들이 선망하는 자리인 대검 공안기획관(2000~2001년)을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박 전 특검의 출세에 목포지역 향판(鄕判) 출신인 부친인 고(故) 박창택 전 목포지원장의 후광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 검찰 내에선 “DJ정부 실세인 박지원이 밀어준다”라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일하는 수완이 좋고 처음 본 사람도 10분만에 ‘형님’‘동생’할 정도로 친화력이 있다”(전직 검찰 관계자)는 평가 때문에 박 전 특검이 출세가도에 오르는 게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고 한다.

검사 이력은 2002년 서울지검 2차장을 거쳐 2005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 오르면서 절정을 맞았다. SK그룹 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수사 등 굵직한 특별수사를 성공리에 마무리하면서 ‘특수’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민정수석 등 기라성같은 후배 검사들이 그를 따랐다. 후배 검사들은 “자기 주장과 개성이 강하고 후배들을 끌고가는 보스기질이 있는 인물”로 그를 기억했다.

박 전 특검은 2009년 1월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사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의 검찰 간부들을 용퇴시키는 분위기를 받아들인 것이다. 전직 검찰 고위관계자는 “박 전 특검이 찍혔다기 보다는 이미 할 만큼 일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가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변호사 시절 흉기 피습으로 곤욕

 변호사 시절의 그는 검사 시절에 비해 다소 빛이 바랬다. 2015년 1월 48대 대한변협 회장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유효투표수 8992표 중 2572표(28.60%)를 얻어 후보자 가운데 3위에 그쳤다. 그 해 6월에는 흉기 피습을 당해 목 부위를 찔려 두 차례 봉합수술을 받는 사건도 겪었다. 범인은 박 전 특검이 맡은 사건의 소송 상대방이었다. 소송에 지자 앙심을 품고, 상대측 변호사인 박 전 특검을 공격한 것이었다. 박 전 특검이 명백한 피해자였지만 한편에선 뒷말도 나왔다. 박 전 특검이 변호한 인물이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였기 때문이다. 박 전 특검이 서울지검 강력부장 재직 때인 1998년 9월 해외상습 도박죄로 자신이 구속한 정씨와의 인연을 변호인과 의뢰인 관계로 이어간 것이다.

공적 무대 복귀도 화려했다. 2016년 11월30일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에 임명됐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자신을 수사할 특검으로 추천한 강력통 조승식 변호사(전 대검 형사부장)와 특수통 박영수 변호사 중 후자를 택했다. 조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이, 박영수 변호사는 국민의당이 추천한 인사였다. “조 변호사는 앞뒤 안가리고 수사하는 스타일이라 너무 부담스러웠다”(전직 청와대 관계자)고 한다. 당시엔 박 변호사를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세게 밀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尹과 인연…“가죽점퍼 차림의 박영수 ” 

 박 전 특검은 좌고우면 없이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를 수사팀장으로 임명했다. 일부에선 현대자동차 수사 당시 함께 대검 중수부에서 일한 인연이 작용했다고 분석하기도 했지만, 실은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영수 전 특검은 오랜 친분이 있는 관계라고 검찰 관계자들은 증언했다. 사진은 2017년 4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공판에 참석하는 당시 박영수 특검과 윤석열 수사팀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박영수 전 특검은 오랜 친분이 있는 관계라고 검찰 관계자들은 증언했다. 사진은 2017년 4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공판에 참석하는 당시 박영수 특검과 윤석열 수사팀장. 연합뉴스

검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1996년부터 1년간 강릉지청에서 근무했는데, 그 때 상관인 류국현 강릉지청장의 소개로 박 전 특검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종종 “(박 전 특검이) 가죽점퍼 차림으로 나왔다”며 첫 만남을 종종 후배 검사들에게 얘기했다.

박 전 특검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특검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성과를 냈다. 한 전직 검찰 수사관은 “(박 전 특검이) 변호사 시절에는 힘이 없어보였는데, 특검을 맡고 나서 목소리와 걸음걸이가 옛날로 돌아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형님 리더십의 한계…

 그러나 박 전 특검의 리더십에는 그늘이 있었다. 보스 기질로 강한 추진력과 단합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형님 대접’을 당연시한다는 것이었다. 박 전 특검이 검사 시절부터 법 위반 소지가 있어보이는 ‘아우들’과 경계심 없이 만난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커리어의 절정 뒤에 이어진 건 나락이었다. 경찰이 2021년 수산업자를 사칭하는 인물에게서 금품을 제공받은 현직 부장검사를 수사하던 도중 박 전 특검이 수산업자와 부장검사를 서로 소개시켜준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코너에 몰린 박 전 특검은 2021년 7월 결국 특검직을 사임했다. 박 전 특검은 사직의 변에서 “논란이 된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검사에게 소개해준 부분 등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한 전직 부장검사는 “박 전 특검 성격상 ‘아우들’의 형님 대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옛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별로 문제된다고 의식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특검이 대장동 사건에 휘말린 원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이 존재한다. 박 전 특검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는 친분이 깊은 사이로, 둘 다 ‘보스 기질’, ‘형님 리더십’에서 죽이 잘 맞았다고 한다. 한 전직 검찰 관계자는 “박 전 특검은 양면성이 있는 인물”이라며 “지금의 사회 분위기와는 다른 올드한 문화의 장·단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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