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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용 전 주일대사] ‘DJ·오부치 선언’ 반대한 아베, 20년 뒤 “이런 게 정치적 결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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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호 03면

‘김대중-오부치 선언’ 산파역 최상용 전 주일대사

1998년 10월 8일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산파 역할을 했던 최상용 전 주일대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모두 이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양국 상호신뢰의 전범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대사 뒤로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글귀가 보인다. 최영재 기자

1998년 10월 8일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산파 역할을 했던 최상용 전 주일대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모두 이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양국 상호신뢰의 전범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대사 뒤로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글귀가 보인다. 최영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은 수교 이후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한·일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16일 정상회담 직후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구동성으로 “1998년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일명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동안 까마득히 잊혀 가던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양국 관계 복원과 새로운 관계 정립의 전범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그 문서 속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란 표현이 들어 있다. 원로 정치학자인 최상용 전 주일대사(2000~2002)는 25년 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산파였다. 지난 23일 최 전 대사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만나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탄생 과정과 오늘의 현실에 주는 교훈을 들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만들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선언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치밀한 준비 작업을 거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취임하자마자 그해 10월 일본 국빈방문과 새로운 한·일관계 선언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대학 교수로 있던 나는 김 대통령 취임 직후 연락을 받고 처음 준비 과정에서부터 끝까지 참여하게 됐다. 준비를 하면서 공을 제일 많이 들인 부분은 김 대통령의 일본 국회연설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일본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였고, 나는 이를 양국 국민 간의 화해와 앞으로의 선린우호를 향한 일본 정부와 국민의 마음의 표현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과정 평화롭고 결과 좋으면 국민 따라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합의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1998년 도쿄 영빈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합의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1998년 도쿄 영빈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선언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첫째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두 나라의 정부, 국민, 전문가 등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유일한 공동선언이라는 점이다. 또 양국의 가장 책임 있는 정치가인 대통령과 총리가 합의해서 만든 첫 선언이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의미를 충족하는 선언은 지금까지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유일하다.”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일본과는 어떤 의사소통과 교섭을 거쳤나.
“15페이지 정도 분량의 공동선언은 20세기의 황혼에서 21세기를 내다보며 전략적으로 꾸민 문서다. 11개의 핵심 내용과 그것들을 실천하는 43개의 행동계획을 담았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 하는 역사조항이었다. 그 다음 어려웠던 것이 10번째 문화조항이다. 그 당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의 한국 진출 반대 여론이 80% 정도 됐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까 답이 나왔다. 영어로 ‘뮤추얼 러닝 프로세스(mutual learning process)’ 즉, 서로가 서로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는 논리였다.”
일본이 왜 이번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했을까. 그러면서도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한다고 했지, 반성과 사죄란 단어를 다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에서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거론한 것은 최근 들어 처음이다. 두 나라 모두가 이 선언을 인정하기 때문에 상호신뢰의 전범이 될 수 있다. 쟁점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전체로서 계승한다’는 대목을 잘 읽어야 한다. 이게 오히려 일본 입장으로서는 더 무거울 수 있다. 역대 내각의 입장 속에는 무라야마 담화와 간 나오토 담화도 들어가지 않나. 간 나오토 담화는 한·일병합은 한국 국민의 뜻에 반한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간 나오토 담화로 얼마든지 일본을 비판할 수 있다. 일본으로서는 ‘간 나오토 담화를 계승한다’는 식의 표현은 못 할 것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한·일 관계가 반전되고 한 단계 더 성숙해진 뒤 양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이걸로 역사문제는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반성과 화해협력, 그걸 일본과 한국이 지킴으로써 이제 미래를 지향하면서 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인적, 물적 왕래를 통해 생기는 무형의 이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내가 만난 일본인 고위층 가운데 김-오부치 선언을 반대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 아베 신조 전 총리만이 명백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랬던 아베도 현직 총리 자격으로 참석한 2018년 김-오부치 선언 20주년 기념모임에서 ‘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반대했는데 그땐 젊었고, 일본이 역사문제에 있어서 한국에 너무 양보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치적 결단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을 갖는다’고 연설했다. 이걸 살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좋고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주일 대사로 재직했는데, 현장에서 겪은 한·일관계의 여러 경험 가운데 교훈이 될 만한 사례를 소개해 달라.
“당시 일본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130여 차례 강연했다. 강연외교라는 공공외교의 장르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한번은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과 이웃 나라를 배려하는 마음이 모순될 수 있지만 그것을 같이 가질 수 있는 리더십이 한국에도 부족하지만 일본도 내가 보기에는 아주 부족하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는데 일본 어느 대학의 입학시험에 그 칼럼을 읽고 논하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자기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의 일개 대사의 글인데 그렇게 평가해 주니 평균적인 일본 국민은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주시했던 역사왜곡 교과서의 채택률은 0.039%였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정신을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실천하면 돌파구가 열린다고 하는 교훈과 확신을 가졌다. 우리가 한·일 관계를 생각할 때 평균적인 일본인의 감성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일본 사람들이 거부하지 못할 비판을 해야 우리의 협상력이 높아진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악의 위기 국면을 막고 양국 관계 정상화와 새로운 미래지향적인 활로를 열었다고 평가한다.”
아쉽거나 미흡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없나. 외교적 완패, 굴욕외교란 평가까지 나오고, 여론이 썩 좋지는 않다.
“‘상대화의 안목’이란 말을 하고 싶다. 외교협상에 완패나 완승은 없다. 그러나 최악은 막아야 한다. 최악을 막기 위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잘해야 차선이고, 최악은 막았지만 뭔가 부족해 하는 것이 차악이다. 외교사는 차선과 차악의 역사다. 상대화의 안목에서 본다면 한·일 간 역사문제에서 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악은 피했다는 의미에서 차선의 선택으로 평가한다.”
윤 대통령과 정부가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가해 기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 온 피해자의 입장에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과거 정권과는 달리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외교장관이 직접 설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설명책임을 반복해서 해야 한다. 박정희 시대의 한·일 국교정상화와 2018년 우리 대법원 판결 사이의 고충에서 해법을 만들어 냈다고 진정성을 갖고 솔직히 얘기하는 게 좋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전체적으로 보니 좋았다고 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생기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업적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속단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도 과거사 쟁점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특히 독도 문제가 있는 한 언제나 정쟁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김대중-오부치 선언 정신을 잘 계승하면 그런 쟁점은 넘어갈 수 있다. 관리가 가능하다. 역사쟁점을 상대화하는 안목을 지도자들은 키워야 한다. 과정이 평화롭고 결과가 편리하고 좋으면 국민이 따라올 것이다. 나는 한·일 관계를 비관적 현실주의와 전략적 낙관주의 두 가지 관점에서 본다. 역사 쟁점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언제 어떻게 역사 문제가 불거져 나올지 모른다. 따라서 비관적 현실주의를 상대화하고 전략적 낙관주의는 잘 살려 나가야 한다.”

한·일 협력 시너지 미래지향적 활용해야

궁극적으로 한국은 일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나.
“한·일 협력의 시너지를 미래지향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인구 5000만 이상, 1인당 GDP 3만 달러 이상 되는 세계 7개 선진국, 아시아의 두 나라에 속한다. 그리고 인권의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 비핵 평화노선을 유지하면서 군사대국인 나라도 아시아에선 한국과 일본뿐이다. 한·미·일 관계에서도 한·일의 시너지가 있으면 미국의 일탈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한·일이 시너지를 거두면 세계는 한국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불구대천의 관계였다. 그런 나라들이 화해해서 유럽연합(EU)을 잘 이끌고 있다. 한·일 관계도 독불 화해 모델에 가까이 갔으면 한다.”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 최 대사가 가장 많은 공을 들여 초안을 작성했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국회 연설에 나오는 대목이다. 한·일 관계는 이제 막 복원의 첫 발을 내디뎠다. 한걸음 한걸음 착실히 쌓아 가는 노력 없이 ‘기적적’으로 관계가 좋아 질 수 없다. 한·일 양국의 지도자들이 되새겨야 할 말이라고 최 대사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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