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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비즈니스 동맹 복원, 반도체 공급망 구축 도움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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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호 05면

한·일 수출규제 해제 의미

권혁욱 니혼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일의 비즈니스 동맹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권혁욱 니혼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일의 비즈니스 동맹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감정골로 깊어진 한·일 수출규제가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권혁욱 니혼대 경제학부 교수는 22일 중앙SUNDAY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수출규제 해제는 신호탄에 불과하다”며 “이번 해제 조치는 그동안 불신으로 막혀 있던 한·일간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동행이 시작됐음을 알린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 회복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는 게 가장 중요 포인트고, 그 구체적 결과가 수출규제 해제 조치로 나타났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일본 히토쓰바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권 교수는 일본과 국제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집중 연구해 한국과 일본의 경제시스템을 수평적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제 전문가다.

수출규제 4년간 한·일 양국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나.
“양국 모두 손해를 봤다. 한국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에 진척을 보이며 잘 대처한 것으로 보이나,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고 보긴 어렵다. 소부장 국산화는 정부 보조금을 받아 진행했을텐데, 더 중요한 곳에 쓰일 자금을 여기 투입하면서 자원 배분 효과가 떨어졌다. 일본은 소부장에서 한국 수출이 줄긴 했지만 해당 품목을 취급하는 기업은 대기업이 아니고, 3개 품목에 불과해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은 없었다. 해당 기업엔 일본 정부가 어느정도 지원해 준 것으로 안다. 한국 수출이 줄어든 부분은 대만이나 유럽에서 수요를 채웠다. 다만 국제 경제의 비교우위 관점에서 보면 분명 손해는 맞다. 아무래도 수출 규제를 해제하는 편이 양국에겐 이득이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피고 기업이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리자, 일본은 2019년 7월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한 달 뒤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이에 한국은 9월 일본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손해인데 왜 수출규제를 단행했나.
“사실 외교적 문제였는데 일본 외무성이 아닌 경제산업성이 주도했다. ‘경제 안보’라는 이유에서다. 당시 무역규제를 할 때 WTO 룰에 저촉되지 않는 ‘경제안보’를 키워드로 들고 단행한 거다. 소재, 부품이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적성국에 가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는데 그 근거를 제출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판매, 수출한 제품을 어디 사용했는지 확인을 요청했으나 그 이후 설명이 없다. 문제가 있으면 지적하고 경고하는 단계가 분명 있었을텐데 없다. 아주 큰 잘못이라 본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 수출 규제 전 충분한 외교적 협의 없이 단행한 것 자체부터가 큰 문제였고, 한국도 관계를 끊는 대응을 하면서 수습불가 상황이 됐다고 본다. 일본은 지금 먼저 손을 내민 한국에게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수출규제 해제를 일본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 일본은 현재 중국(센카쿠 열도), 러시아(쿠릴 열도)와 영토분쟁이 있다. 여기에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등 안보적으로 굉장히 위기 상황이다. 내부적으로는 고령화와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경제, 안보 측면에서 사면초가다. 여기서 한국과 멀어지게 되면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은 완전히 고립된다. 사실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굉장히 원했을지 모른다. 일본 총리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 정치권력 관계에 의해 이뤄지다보니 바로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다. 이때 먼저 손을 내민 윤석열 정부의 행동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한국보다 제도 완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도 빠른 시일 내 진행될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국은 그간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3대 품목 국산화에 힘써 대일 의존도를 대폭 줄였다. 이렇다보니 수출규제 해제로 국산화에 힘쓴 국내 소부장 기업이 피해를 입는 건 아닌지 우려 목소리도 있다. 권 교수는 “비교우위에 따라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100대 품목 이상으로 많은 소재, 부품을 수입하고 있고, 무역통계상 2019년 이후 사실상 수입 규모는 다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미국 주도로 재편되는 공급망을 유심히 봐야 한다”며 “수출 규제 해제는 한국이 주요 플레이어로 들어왔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주요 플레이어라는 말은 무엇인가.
“한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사실상 일본 반대로 가입하지 못했다. 이번 조치의 효과가 국제협정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해 조만간 CPTPP나 미국 주도의 쿼드(QUAD)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고, 발언권을 가지고 주요 플레이어로 활약할 수 있다. 근본적으론 미국과 중국 사이 애매한 전략적 위치가 아닌 미국 측에서 호주, 일본과 함께 중요한 축을 맡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를 확실히 하는 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회복이다. 중국과 대립하겠다는 게 아니라 중국이 어떤 압박을 가해왔을 때 협상카드, 바게닝 파워(교섭력)가 생긴 것이다. 한국이 이번에 일본에 손을 내민 건 미국 편에 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이 일본과 비즈니스 파트너가 됐을 때 이득은 뭔가.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중국은 원유 수입보다 반도체 수입으로 인한 적자가 훨씬 크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발버둥치는 이유다. 반도체 산업에서 두각을 보이는 한국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한국은 타국가 대비 지금까지도 제조업 비율이 높은데, 중국 덕분에 유지된 측면이 크다. 그만큼 중국 의존도가 커 중국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 이것이 한국의 딜레마였다. 미국이 중국 배제 정책을 펼쳐가는 이때 한-일 비즈니스 동맹으로 밀고 간다면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차세대 기술 측면에서 우위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TSMC와 굳건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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