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로에 선 은행, 개혁의 길을 묻다] 알뜰폰·배달앱 이어 미술품 보관…비금융 부업에 눈돌리는 은행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32호 09면

SPECIAL REPORT

“땡겨요는 진옥동 회장이 은행장 시절부터 사업 기획에서 출시까지 손수 챙긴 신한그룹 역사상 최초의 비금융플랫폼 사업이다. 2020년 12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아 사업 개발에 착수했다.”

신한은행의 비금융플랫폼 역작으로 꼽히는 배달앱 ‘땡겨요’에 관한 은행 측의 보도자료다. 무슨 배달앱이길래, 금융그룹 수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이토록 힘을 줬을까. 초반 성적은 고무적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월 빅배달앱 3사(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가 장악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후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땡겨요’는 출시 1년 만에 가입자가 170만명을 넘어섰고, 상반기 200만명을 바라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KB국민은행은 알뜰폰 시장에서 금융·통신 융합의 성공 모델을 그려가고 있다. 오는 4월 운명의 시험대에 오른다. 은행은 현행법상 통신업을 부수업무로 영위할 수 없다. KB국민은행이 2019년 알뜰폰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2년간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특례서비스 기간을 부여받았고, 한 차례 연장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리브엠 가입자수는 지난 2월 40만명을 돌파했다. 최근 KB국민은행은 금융위원회에 알뜰폰을 은행의 부수업무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KB국민은행의 리브엠(Liiv M)을 통해 알뜰폰이 은행의 부수업무로 지정되면, 금융사들이 정식으로 통신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은행들이 본업의 벽을 넘어 비금융 서비스의 문을 적극 두드리고 있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손쉬운 이자 장사를 압박하면서 비금융 서비스 경쟁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분야도 다양하다. KB국민은행의 리브엠이 포문을 연 알뜰폰 시장은 금융과 융합할 이종산업으로 궁합이 좋다는 분석이다. 통신요금 결제는 자동납부 비중이 높고, 이체나 카드 등과 연계한 서비스로 충성 고객도 확보할 수 있어서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알뜰폰 시장에 진입한 곳은 KB국민은행 뿐이지만,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등도 시장에 간접적으로 발을 담그고 있다.

관련기사

플랫폼 비즈니스도 매력적인 공략대상이다. 우리은행은 자체 구매 솔루션을 구축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한 디지털 공급망 관리 플랫폼인 ‘원비즈플라자’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WON뱅킹 MY택배’ 서비스를 통해서는 간편한 편의점 택배 예약·결제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야나두와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맺고 디지털 금융과 에듀·스포츠테크 플랫폼 협력에 나선다. 이밖에도 하나은행은 개방형 수장고인 하트원을 통해 미술작품의 안전한 관리와 보관, 처분까지 가능한 신탁서비스를 내놨다. NH농협은행은 모바일 앱에서 전국 꽃 배달, 방문 택배 등 생활 밀착형 비금융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은행들이 이처럼 비금융서비스로 영토를 넓히려는 건 디지털 뱅킹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더는 이자수익만으로 영위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맞물려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본업인 금융과 비금융 사업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결합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수익이 되지 않더라도 지속해서 부업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알뜰폰 가입자의 통신 데이터나 배달앱 이용 데이터 등이 축적되면 대학생이나 주부, 자영업자 등 신파일러(금융 이력이 적어 대출받기 힘든 사람) 고객의 신용평가가 가능해진다.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를 맞아 금융규제가 완화되는 분위기도 은행의 변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금산분리, 전업주의 등 과거의 전통적 틀에 얽매여 구애받지 않고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강조해왔다. 한 은행 관계자는 “비금융 서비스들이 은행 부수업무로 지정받아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리기 전에, 제휴 형태로 시장에 선진입해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이러한 신사업 확장에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자본 공룡’ 은행이 새롭게 진입하는 골목마다 들려오는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을 넘어서야 한다. 당장 은행의 알뜰폰 부수업무 지정을 두고 중소 알뜰폰업계에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은행이 막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저렴한 요금제를 출시하면 요금경쟁에서 한계가 있는 중소 알뜰폰 사업자는 도산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반발이 쏟아진다. 경제민주주의21 등 시민단체에선 논평을 통해 “은행과 산업자본 간 야합의 길을 활짝 열어 우리 사회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소불위의 경제권력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혁신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KB국민은행의 ‘리브엠’과 신한은행의 ‘땡겨요’는 혁신금융서비스 1·2호다. 혁신금융서비스는 현행법상 규제를 일정부분 풀어주는 ‘규제 샌드박스’다. 도입된 지 3년이 넘었지만, 1·2호 사례 외에는 별다른 은행권의 성공 사례를 찾기 어렵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규제샌드박스에서 혁신 내용보다 상품 규제 회피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