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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에 휘둘리는 은행 시스템 탓, 국민들 연 20조 이상 금융비용 더 부담” [기로에 선 은행, 개혁의 길을 묻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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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호 08면

SPECIAL REPORT 

서정의

서정의

“은행의 과점 구조로 국민들이 연간 20조원 이상의 금융비용을 더 부담하고 있다.”

2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소공별관에서 만난 서정의(사진) 한국은행 국장은 “한국의 특이한 금융시스템 탓에 국민들이 무거운 금융비용을 부담하고, 국가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은행의 과점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은행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이 최고의 금융 혁신”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은행의 개선 방안으로 언급되는 스몰 라이선스나 핀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은행의 지급결제업무를 허용하는 등의 논의에 대해선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먼저 ‘은행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 국장은 은행의 3가지 조건을 꼽았다. 첫째, 중앙은행에서 저렴한 금리에 돈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예금보험공사의 예금보험제도로 보호해야 한다. 셋째, 은행의 건전성을 위해 글로벌 기준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금융업체를 제1금융권, 제2금융권 하는 식으로 분류하는 관행이 있는데, 선진국에선 찾기 어려운 행태다. 소비자들은 제2금융권이 고금리 대출을 전문으로 취급하고, 빈번하게 사고나 일으킨다고 여긴다. 서 국장은 “제2금융권은 이런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열등한 업체 취급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용카드사, 캐피탈 등의 구분도 국내 금융권에만 존재하는 희한한 형태다. 그는 “은행의 업무를 신용카드사, 캐피탈 등으로 쪼개놨다”며 “이들은 은행보다 조달금리가 높으니 고금리 카드론으로 돈을 벌 수밖에 없고, 이는 저소득층의 부담을 키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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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으로 은행의 진입 장벽은 낮추고, 업무는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의 은행 수는 각각 1만개 정도 되는데, 우리나라는 5대 은행이 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그 폐해는 심각하다. 현재 은행에서 저금리로 대출을 받는 경우는 전체 가계대출에서 절반에 한참 못미친다. 국내 은행권이 국민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서 국장은 “우리나라가 유럽처럼 은행 대출 위주로 전환할 경우 절약할 수 있는 금융비용은 2018년 추정치로도 20조~30조원 정도”라며 “현재는 그 폭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가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진다. 담보가 확실한 가계대출만으로도 ‘땅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연간 수십조원의 이익을 내고 있는 은행들이 리스크가 있는 기업대출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은행업 진입 자유화’를 근본적인 처방으로 내세웠다. 우리나라 은행의 설립 문턱은 높다. 일반은행은 최소자본금이 1000억원, 지방은행 250억원이다. 이에 반해 미국이나 유럽에선 최소 자본금 기준이 1억에서 10억원 수준이다. 그는 “은행의 규모가 작더라도 중앙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해 낮은 금리로 빌려주고 예금도 보호해주면 신용도 높은 사람들도 소형 은행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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