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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은행, 개혁의 길을 묻다] 5대 은행 ‘그들만의 리그’ 깨기, SVB 후폭풍에도 개혁 강행…“경쟁 촉진 시급” vs “부실 대비 먼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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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호 08면

SPECIAL REPORT

서울 시내 은행 자동화점에 통합 이전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시스]

서울 시내 은행 자동화점에 통합 이전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시스]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 국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 상생금융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향후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튼튼하게 쌓는 데 쓰는 것이 적합하다.”(윤석열 대통령)

“약탈적이다. 과점 은행들이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금리 상승기를 맞아 ‘이자 장사’로 돈 잔치를 벌인 은행들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은행의 과점 폐해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금융당국은 5대 은행(신한·KB·하나·우리·NH농협)의 과점 체제를 허물고 완전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새로운 은행의 진출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약 40년 동안 이어온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자본의 분리)의 벽이 깨질지는 이번 개혁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여파로 글로벌 금융권에서도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산업자본의 진입을 허용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SVB 등 소규모 은행이 연이어 파산한 것을 들어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기보다 건전성 강화에 치중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SUNDAY는 금융 및 경제 전문가 5명에게 연일 정부의 매서운 채찍을 맞고 있는 은행권의 체질 개선과 균형 발전을 위한 제언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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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SVB가 지난 10일 폐쇄된 데 이어 시그니처은행(SB)이 12일 폐쇄됐다. 코로나19로 커진 유동성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SVB의 건전성에 균열이 생기면서 파산했다. 이에 전세계적으로 금융권의 건전성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은행 개혁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미국 SVB 파산사태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부위원장은 당초 계획대로 6월 말까지 은행권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을 공고히 했다. 전문가들도 SVB 파산 여파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금융불안 속 은행 개혁 가능한가.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국민연금이 SVB·SB·크레디트스위스(CS) 등에 물린 손실액(약 2800억원)이 적은 규모는 아니지만, 우리 경제를 흔들 수준은 아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의 위축 우려도 있지만,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리스크 관리에 더 신경써야 한다. SVB도 미국에서 규제 대상이었다가 2018년부터 규제 완화가 적용됐던 곳이다.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SVB 파산은 단기적 이슈고, 은행 개혁은 중장기적 문제다. 개혁은 개혁대로 하면서 멈추면 안된다.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SVB 사태를 이유로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물타기를 하는데,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 SVB의 국내 여파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본다. 물론 우리나라 금융사도 안심할 수는 없다. SVB의 영향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어서다. 지금 고금리로 고통받고 있는 분야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대형 은행은 끄덕 없을 것이라고 보이나, PF와 연관이 있는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은 부실 우려가 있다. 이들 2금융은 유동성을 많이 확보하고, 뱅크런(대규모 자금 인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심시켜야 한다. 그러나 2금융에서 문제가 터진다 해도 1금융으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 개별 은행 파산 이슈로 끝날 것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SVB 사태 이후 전세계 금융산업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은행 시스템의 급격한 충격이나 미국과 같은 뱅크런의 우려는 적다. 하지만 대형은행으로 여·수신이 몰리고 있다. 2금융에선 뱅크런 대비도 필요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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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이 베이비스텝을 밟았다. 국내 영향은.

▶하준경 교수=“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번의 베이비 스텝은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준은 아니다. 연준은 대형 은행들의 리스크 관리를 많이 신경써왔기 때문에 금리를 인상해도 금융 불안이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작은 금융기관들은 잠재된 리스크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재 SVB 사태 등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처럼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엮인 것도 아니어서 사후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미 연준의 0.25%포인트 인상은 적정하다고 본다. 이제 고민은 한은의 금리 결정이다. 미국과 금리 격차가 확대되지 않도록 우리나라 기준금리도 따라올려야 하는데,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30%가 이자도 못 낼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 신중할 수 밖에 없다. 한은이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따라 0.25%포인트 인상하거나 동결할 것이라고 본다. 동결의 경우 한·미 금리차 확대에 따른 외환시장 불안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의 매서운 채찍질에 잔뜩 웅크렸던 주요 금융지주들이 최근 사업보고서를 통해 “정부 압박에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관치(官治)에 대한 반감을 에둘러 나타났다. 하나금융은 2022년도 사업보고서를 통해 “금융권의 완전경쟁 체제 도입 및 예대마진 축소 등은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도 “국내은행의 위험관리 강화 영향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며 “금융의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서민·중소기업 지원, 금융소비자 보호 및 사회공헌 확대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권 노조의 비난 수위는 한층 세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지난 20일 관치금융 규탄 대회를 열고 “정부가 고금리 고통을 완화할 정책 대안없이 모든 문제를 금융사 탓으로 몰아가는 혐오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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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내세운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공공재’ 논란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정책 역행이라는 날선 비판도 나왔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는 국내 은행 수는 26개에 달했다. 그러나 은행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정부가 주도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으로 지금은 지방은행까지 합쳐 12개로 줄었다. 현재의 5대 은행 과점 체제를 만든 것은 정부와 금융당국이었다는 것이다.

공공재 논란의 본질은 무엇일까.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은행이 공공재는 아니지만, 공공성과 시장성을 함께 갖추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은행들의 예금·대출 금리를 정부에서 개별적으로 논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보지만,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에 대해 얘기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과도한 예대금리차는 과점 지위로 인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주원 실장=“은행은 공공재는 아니다. 용어 선택이 잘못됐다. 정부가 인허가를 갖고 자유로운 진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과점 때문에 금융소비자의 효용이 떨어진다면 정부의 책임일 수 있다. 은행이 늘어나 경쟁이 심화하면, 소비자들은 금리 경쟁력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게 되니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 그렇다고 금융당국의 이자장사에 대한 비판을 관치금융이나 과도한 규제로 보기도 어렵다. 정부가 고금리 장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표출한 것뿐이다. 은행은 자율적으로 금리를 결정할 수 있다. 지금은 은행들이 자신이 없어서 꼬리를 내린 모양이다.”

▶하준경 교수=“은행은 정부에서 인허가를 받아 영위하고, 망하면 정부에서 구제도 해준다. 은행은 이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이를테면 국내 은행은 주로 변동금리를 취급하는 관행이 있다보니, 금리인상기 금리 리스크를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는 문제가 있다. 미국 등에선 고정금리 대출을 많이 해준다. 그러면 리스크는 은행쪽으로 간다. 선진국은 금리 인상 등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면 돈을 빌린 사람만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고 빌려준 사람도 부담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국내 은행의 관행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매주 수요일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실무작업반’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5대 은행의 과점 체제를 허물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현재 알려진 은행 개혁의 밑그림은 소규모 인허가(스몰 라이선스)와 챌린저 뱅크를 키우는 ‘새로운 금융’의 등장이 바탕에 있다. TF는 챌린저 뱅크를 도입하면 금융서비스가 다양화하고 수수료는 낮아져 소비자의 효용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진입 장벽도 낮춰줄 방침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이러한 신규 경쟁자를 투입해, 과점 현상을 해소한다는 방안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하다. 2017년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가 ‘시장의 메기’로 주목받으며 등장했지만, 큰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2022년 말 기준 국내 전체 은행권(20개 은행) 중 5대 은행의 총자산은 70.73%에 달한다. 반면 카카오뱅크, 토스뱅크의 자산은 각각 1.26%, 0.84%에 불과하다. 이에 시장에 균열을 일으킬 플레이어의 등장을 위해서는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거대한 산업자본 등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은행 개혁,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

▶주원 실장=“특화은행 설립의 방향은 좋다. 그런데 그 은행들이 언제 성장할까.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다. 시장 과점을 막으려는 게 개혁의 방향성이라고 한다면, 대형 금융기관을 국내에 많이 만들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계 자본이나 우리 산업자본의 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것이다. 외국계 은행이 들어와 자유롭게 영업하고, 대기업도 은행업을 할 수 있도록 풀어버리면 된다. 시장에 공급자가 많아야 소비자 이윤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김대종 교수=“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대형 은행의 경쟁력이 중시되고 있다. 챌린저 뱅크도 좋지만, 효율성을 위해서는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주요 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곳은 산업자본 밖에 없다.”

▶성태윤 교수=“은행 숫자를 늘리는 것이 답이라고 보진 않는다.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건 부실화 위험이 있다. 최근 은행권 ‘돈 잔치’의 비난 핵심은 예금과 대출 금리차에서 나온 마진에서 출발했다. 예대 마진이 과도하게 커지지 않도록 금융당국이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효섭 연구위원=“처음 은행 개혁의 시발점이 국민들에게 과도한 금리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중소벤처기업, 서민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특화은행이 많아지는 것이 좋다고 본다. 현재 실시간 지급결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데, 파급이 매우 클 수 있다. 특히 상호금융은 급격한 인출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코로나 사태와 PF 이슈 때문에 건전성 규제는 강화될 것이고, 소규모 금융기관이나 상호금융은 그 기준을 준수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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