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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밀착에 맞서자” 서방 진영 ‘안보 짝짓기’ 가속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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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호 13면

강화되는 ‘다층 집단안보체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왼쪽부터)가 지난 13일 미국에서 오커스 정상회의를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왼쪽부터)가 지난 13일 미국에서 오커스 정상회의를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국제사회의 안보 협력 강화 움직임이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지구촌 안보 환경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면서 아시아와 유럽 각국이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대륙을 넘나들며 우방국들과의 ‘안보 짝짓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6~17일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데 이어 지난 21일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를 국빈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국제적 고립이 심화된 러시아는 중국과 손잡고 서방에 대응하는 외교전을 본격화할 수 있는 호재를 맞았다. BBC 방송에 따르면 시 주석은 무기 제공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약속했다. 중·러의 권위주의 블록화 강화를 전 세계에 알린 셈이다.

같은 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현장인 부차를 찾아 헌화도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에 3000만 달러 추가 지원과 비살상용 군사 장비 제공을 약속하고 전후 재건 참여 방안도 논의하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정이 겹친 건 우연이겠지만 아시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가 유럽에서 교전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나란히 찾은 건 상징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벌 안보 환경’ 지도 자체를 뒤흔들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서방 진영은 러시아와 중국 견제를 위한 공동 대응 전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핵심은 인도·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기존 동맹 체제에 더해 강력한 ‘다층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캐나다가 한·미·일 3국과 공동으로 새로운 4개국 안보 협력체 창설을 제안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이들 4개국이 손잡을 경우 환태평양 지역엔 기존의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미·일·호주·인도 등 4개국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에 이어 강력한 집단안보체제가 다층으로 형성되게 된다. 이를 통해 환태평양의 민주주의 진영 간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권위주의 세력인 중·러는 물론 핵·미사일로 위협하는 북한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본도 이 같은 서방의 글로벌 집단안보체제 강화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고 나섰다. 기시다 총리도 우크라이나 방문에 앞서 지난 19~21일 뉴델리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났다. 올해 주요 7개국(G7) 의장국인 일본과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인 인도의 정상이 만난 데다 인도가 쿼드 회원국이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립을 지켜온 ‘글로벌 사우스’ 세력의 대표 국가라는 점에서 이번 회동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렸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8일엔 도쿄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만나 양국 총리·각료급 첫 경제·안보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상호 공급망과 안보 협력망 확충은 물론 중국에서 철수할 독일 기업의 연구·생산 시설의 일본 이전 문제도 협의됐다. 일본은 올 들어 영국과 안보 조약을 맺고 프랑스·이탈리아와도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등 유럽 주요국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안보 체제의 중심부에 급속히 접근하고 있다. 아·태 지역에서도 호주와 안보 조약을 맺은 데 이어 필리핀과도 관련 논의에 들어갔다. 전통의 일본·대만 파트너십도 강화하며 인·태 지역의 안보 핵심 행위자로 발돋움하는 모습이다.

호주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주목된다. 지난 13일엔 미·영·호주 3국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 첫 대면 정상회의에서 버지니아급 공격용 핵 추진 잠수함의 제공·건조와 기술 이전을 확약받았다. 3국 정상은 사이버 안보, 인공지능, 퀀텀 컴퓨팅, 해저 역량 분야 협력도 선언했다. 하나같이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이 필요한 한국에 절실한 분야들이다.

반면 한국은 이 같은 글로벌 안보 협력의 가속화 추세 속에서 여전히 제한적인 역할과 위상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아시아 전략 전문가인 잭 쿠퍼 미국기업연구원(AEI)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글로벌 안보 협력 체제 중 G20에서만 활동하고 있을 뿐”이라며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쿼드나 오커스,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등 어디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경제력·군사력 성장에 걸맞게 다층 집단안보체제 가속화라는 지구촌의 흐름에 보다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외교 기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일본과 호주가 미국·유럽과 손잡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외교·군사 분야 주도 국가로 부상할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와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등을 계기로 서방의 글로벌 다층 집단안보협력 체제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경제적으로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안보 분야에서도 지원받는 나라에서 적극 동참하는 국가로 탈바꿈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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