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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수의’가 반가웠던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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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호 34면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팬데믹이 끝난 봄날, 서울 시내 고궁 주변에선 한복차림의 1020세대가 많이 보인다. 명절은 고사하고 결혼식장에서조차 한복이 사라진 지 오래라 젊은층에서 한복 입기가 인기라니 반갑다가도 한편으로 걱정이 앞선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이렇게라도 젊은 세대 옆에 한복이 자리 잡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가도, 이들이 진짜 즐기고 있는 것이 한복이 아니라 SNS 인증샷을 위한 독특한 경험에 불과하다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고궁 주변 상점에서 빌리는 대여한복들의 국적불문 디자인을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들 한복은 대부분 치마 안쪽에 ‘패티코트’라 불리는 망사 소재의 서양 속옷이 달려 있다. 지난주 종료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서 본 여왕·공주들의 드레스처럼 볼륨을 한껏 부풀리기 위해서다. 저고리에도 서양 상의 소매 형태 중 하나인 ‘퍼프소매(어깨 부분을 봉긋하게 부풀린)’가 달린 게 많다. 심지어 치마 뒤쪽에 리본 장식이 달린 것도 있다.

국적불문의 대여한복 디자인 우려
전통에 충실한 ‘수의’ 미학 알아야

의·식·주가 현대인의 일상에 맞게 변화하는 것은 필수불가결이다. 다만, 과거를 잊은 현재와 미래는 존재할 수 없듯, 전통의 가치와 원형을 먼저 알고 그 기반에서 현대적인 재해석이 창조돼야 한다. 지난 3월 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신사동의 갤러리 LVS에서 열린 ‘사개 死開 : 지고, 피고’ 전시가 의미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개 死開 : 지고, 피고’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전통한복 디자이너 이혜순(담연), 이혜미(사임당by이혜미), 김민정(휘유), 송혜미(서담화)씨가 손바느질로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비단 수의를 전시하는 자리였다. 올해는 윤달이 돌아오는 해로, 전시가 끝나는 양력 3월 22일부터 4월 19일이 이에 해당한다. 윤달은 일 년에 한 달이 추가로 더 삽입돼 음력과 양력의 간극을 메우고 24절기가 온전히 순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로부터 신이 인간의 부정한 일에 감시를 거두는 기간이라고 해서 부정 타지 않는 달로 여겨졌고, 이때 수의를 준비하면 부모가 장생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직접 기획한 디자이너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수의를 선보이는 것 이상의 바람이 있었다.

첫째는 전통장례문화를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조선 성종 때 신숙주 등이 편찬한 책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수의는 생전 입었던 옷 중 가장 좋은 것을 입거나 새로 장만한 옷을 입었다. 조선 선비의 수의는 바지·저고리에 도포까지 예를 잘 갖춘 차림이었고, 왕과 왕비 또한 금박과 자수가 놓인 화려하고 아름다운 예복으로 수의를 입었다. 그러던 것이 1934년 조선총독부가 의례준칙을 공표하고 관혼상제 예법을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획일적인 지금의 삼베 수의로 바뀌었다.

사실 전통장례문화에 따라 수의 일체를 준비하려면 망자를 위한 베개와 이불까지, 그 가짓수는 수십 개가 넘는다. 그러니 수의의 ‘간소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조선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강제로 정해 놓은 ‘삼베 옷’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화장을 할 때 삼베는 비단보다 깨끗하게 타지 않는다고 한다. 가격도 삼베 수의가 비단 수의보다 절대 싸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전통장례문화를 몰라서, 경황이 없어서 상조회사들이 내미는 가격대별 삼베 수의 1·2·3·4번 중 선택하고 만다.

둘째는 전통한복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목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의’는 삼베 수의마저 유물로 출토된 수백 년 전 한복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망자의 옷이기에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취향이나 변화·발전된 일상을 접목하지 않은 덕분이다. 말하자면 패티코트를 넣은 치마, 퍼프소매 저고리 차림의 수의는 없다. 대신 품위 있는 전통한복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다. 디자이너들은 ‘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 엄청난 차이를 알려주고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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