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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한의 시사일본어] 관제춘투와 만액회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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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호 35면

시사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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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2023회계연도는 4월 1일부터 내년 3월 말까지다. 주요 기업들은 신년도를 앞두고 이달 중순 ‘춘투(春鬪·슌토)’를 일제히 마무리했다. ‘춘계 투쟁’의 줄임말인 춘투는 개별 기업의 노동조합이 전국 규모 노동단체의 지휘 아래 봄철(2~3월)에 임금 인상 등의 요구를 회사 측에 제출, 단체 협상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일본 경제가 고도 성장기에 진입한 1950년대 중반부터 매년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노사 협상은 반세기 이상 극한 투쟁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지난 아베 정권 말기부터는 ‘관제 춘투’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 매년 1~2% 정도로 임금 인상이 억제되자 정부가 앞장 서서 기업 측에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하는 모양새가 됐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올 초 회사 경영진에게 최소 3% 이상의 임금 인상을 강하게 요구했다.

올 춘투에서 대기업들은 잇달아 ‘만액회답(滿額回答)’으로 호응했다. 노조에서 요구한 임금 인상안을 회사 측이 100%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덕분에 올해 춘투는 예년보다 일찍 끝났고, 임금 인상률은 1990년대 초 버블(거품) 경제 붕괴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제조업 대기업들은 지난해 평균 2%의 두 배를 훨씬 넘는 임금 인상을 단행했다. 전기·전자 업종인 후지쓰, 히타치제작소, 도시바, NEC 등은 총액 기준 4%대다. 혼다는 5% 올렸고, 도요타자동차 인상률은 20년 만에 최고였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연봉 기준 7%에 달했다. 유니클로는 신입사원과 신임 점장 월급을 각각 17.6%와 34.5%씩 파격 인상했다.

기업 측이 노조 요구를 전면 수용한 것은 국내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과 엔화 약세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4%를 넘어서 4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은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고물가로 실질 소득이 줄었다며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총리가 나서 기업들에 임금인상을 강하게 요구한 이유다.

눈여겨볼 포인트는 내년 이후에도 큰 폭의 인상이 추세적으로 이어질지 여부다. 임금 인상이 노동 생산성 향상과 내수 활성화로 연결되면 일본 경제가 선순환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 코스트 삭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온 기업들이 정규직을 다시 확대할지도 주목된다. 일본 사회가 30여년 만에 ‘안정’보다 ‘변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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