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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엔솔, 미국에 7.2조 투자…중국 ‘배터리 굴기’에 맞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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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호 06면

한·중 배터리 전쟁 가열

지난 15일 국내 대표 2차전지 산업전시회 ‘2023 인터배터리’를 찾은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이날 K-배터리 3사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을 공식화했다. [뉴시스]

지난 15일 국내 대표 2차전지 산업전시회 ‘2023 인터배터리’를 찾은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이날 K-배터리 3사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을 공식화했다. [뉴시스]

LG에너지솔루션(엔솔)이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리크에 7조2000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 24일 LG엔솔은 이사회를 열고 애리조나주에 4조2000억원을 들여 27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또 같은 부지에 3조원을 별도 투자해 총 16GWh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파우치형 배터리 생산 공장도 짓기로 했다. 지난해 3월 예상했던 투자 규모(1조7000억원)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2025년 완공되면 총 생산능력은 43GWh로 북미 지역 배터리 독자 생산 공장 중 최대 규모다. LG엔솔 최고경영자(CEO)인 권영수 부회장은 “급성장하는 북미 전기차와 ESS 시장을 확실히 선점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투자의 배경으로는 중국업체의 ‘배터리 굴기’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꼽힌다. 중국 배터리 업체는 최첨단기술이 아닌 접근 가능한 차선의 기술을 활용하는 ‘-1 기술전략’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고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삼원계 배터리보다 원자재부터 최종재 생산까지 중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LFP 배터리로 밀고 가겠다는 셈법이다. 조은교 산업통상연구본부 해외산업실 부연구위원은 “이 전략으로 해외시장까지 진출하며 독자 표준을 확립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배터리 업계의 확장세가 심상치 않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배터리 점유율은 중국 최대 배터리업체 CATL이 37%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LG에너지솔루션(13.6%)의 2배 이상이다.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점유율을 합친 것(23.7%)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SNE리서치는 “CATL과 BYD 뿐 아니라 10위권에 새로 진입한 파라시스도 메르세데스 전기차 EQ 시리즈 판매 호조로 폭발적 성장을 했다”고 분석했다.

그간 NCM 배터리 개발에 주력해온 K-배터리 3사가 일제히 ‘LFP 배터리’에 주목한 이유다. 지난 15~17일 열린 세계 최대 규모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3’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LFP 배터리 시제품을 전시했고, 삼성SDI는 LFP 배터리 개발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배터리·전기차 시장조사업체 EV볼륨에 따르면 2020년 배터리 시장의 5.5% 규모던 LFP 배터리 분야는 2022년에는 27.2%로 비중이 커졌다. LFP 배터리는 저렴하지만 기술난이도와 에너지 밀도가 NCM 배터리보다 30% 가량 낮다. 그래서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중국이 저가수주 전략으로 LFP 배터리 시장을 장악한 뒤 순식간에 다른 분야로 판도를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BYD는 모듈을 생략하고 셀을 늘려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방식의 CTP 기술을 적용한 블레이드 배터리를 출시했고, 리튬·망간·인산·철(LMFP) 배터리 등의 개발에도 나섰다. 5년 전부터 중국의 LFP, NCM 배터리 특허 출원 건수가 한국·미국·일본을 추월했다. ‘-1 기술전략’ 개념을 명명한 은종학 국민대 중국학부 중국정경전공 교수는 “이런 ‘디스럽티브이노베이션(판을 뒤엎는 혁신)’으로 중국이 ‘배터리 굴기’에 성공할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블록화’로 중국은 공급망 구축에도 유리한 상황이다. 핵심 원료인 니켈의 자급률은 49%, 흑연은 100%에 달한다.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아세안 지역으로 투자를 확대해 인도네시아에선 니켈 생산부터 완성차 시장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반면 한국은 원료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지난해 2차전지 핵심소재 수산화리튬의 87.9%가 중국산이었다. 김유정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광물자원전략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한국 배터리 산업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원료, 소재”라며 “블록화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0’은 아니어야 한다”고 말했다.

K-배터리가 판도를 뒤집을 기회는 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미국 IRA와 최근 유럽이 내놓은 핵심원자재법(CRMA) 등으로 기술력을 높일 시간을 벌었다”고 말했다. 현재 K-배터리 3사는 헝가리, 폴란드, 오스트리아에 공장이 있다. 내후년 LG엔솔의 미국 공장 등이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LFP 배터리가 워낙 저렴하고 구하기 쉽다보니 미국 업체들이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납품을 받으려는데, 중국 배터리는 쓰고 싶지 않아 한국 업체에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분간’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IRA법으로 당장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지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득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건 이득을 독식하기 때문인데, 중국이 도태되면 그 다음 타깃이 누가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조은교 위원은 “원재료 공급처를 다변화해 독자적인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며 “해외 블록별로 진출전략을 만들거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나 동맹국 등 협력할 수 있는 국가와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맺는 것도 가능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앞으로 5년이 기로가 될 것”이라며 “연구개발(R&D)부터 기술적인 초격차 유지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해외 광물 개발에도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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