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평화 중재자" 유럽 정상 줄줄이 초청한 시진핑의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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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일 러시아를 국빈방문하며 반미(反美) 전략 연대를 공고히 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곧바로 유럽 지도자들을 베이징으로 초청하며 정상 외교를 이어가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외신은 시 주석이 유럽 지도자들에게 ‘중국의 우크라이나 평화 중재 노력’을 강조함과 동시에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대(對)중 노선에 동참하지 말 것’을 촉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21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후 성명 발표에 참석했다.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21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후 성명 발표에 참석했다.로이터=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가디언 등에 따르면, 전날 스페인 정부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중국 지도자의 공식 요청에 따라 중국을 국빈방문한다고 밝혔다. 산체스 총리는 30일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 열리는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인 보아오 아시아 포럼(BFA)에 참석한 뒤 베이징으로 이동해 시 주석과 리창(李强) 총리, 자오러지(趙樂際) 전국인민대표회의 의장 등을 만난다.

폴리티코은 다음달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장기 중국 순방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매체들은 마크롱 대통령에 이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이 연달아 베이징을 방문한다고 전했다.

中 '평화 중재자' 어필…유럽에 손 내밀어

앞서 중국은 지난 7일 친강(秦剛) 외교부장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미국과는 거리를 두되 유럽과는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당초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의 관계를 안정화하고 경제 회복에 전념하려던 중국은 지난 2월 정찰 풍선(중국은 과학연구용 비행선이라 주장) 문제로 미국과 갈등이 심화돼 조기 관계 개선이 쉽지 않다는 판단 하에 유럽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베이징을 찾은 유럽 정상들에게 ‘우크라이나 평화 중재안’을 적극 피력하며 중국이 ‘중립 코너’에서 평화 협상에 중재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변할 것으로 관측된다. NYT는 “러시아 국빈방문을 마치고 이제 막 베이징으로 돌아온 시 주석이 서방 국가에 냉대를 받고 있는 자신의 평화 프레임워크에 대한 지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분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크렘린궁에서 정상 회담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크렘린궁에서 정상 회담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시 주석은 러시아의 침공 1주년인 지난달 24일 외교부 명의로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12개 조치를 제시한 바 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주권 존중과 휴전, 평화 협상 등을 제안하고 러시아 철군은 언급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시 주석은 이 중재안을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의 핵심 원칙으로 언급했다.

미국 등 우크라이나의 동맹국들은 중국의 중재안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주장대로 ‘러시아군의 철군 없는 휴전’이 이뤄지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불법 획득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라는 입장이다.

유럽 "중·러 파트너십 강화 막아야"

특히 이번 중‧러 정상회담을 지켜본 유럽 지도자들은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EU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크리스야니스 카린스 라트비아 총리는 “시진핑과 푸틴의 정상회담은 유럽을 눈뜨게 했다”면서 “중국이 브로커 역할을 넘어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에 서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중국과 러시아의 확고한 파트너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나토 연합 대 중·러’의 갈등으로 확대시킬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서방 주요국 정상 가운데 가장 먼저 시 주석과 만나는 산체스 총리는 23일 기자들에게 중국을 “최고 수준의 글로벌 행위자”라고 표현하며 “우크라이나의 평화에 대한 시 주석의 입장을 직접 듣는 건 매우 중요하며, 평화의 조건을 정하는 주체는 우크라이나여야 한다는 사실을 시 주석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지난 2018년 스페인에서 페드로 산체스 총리와 서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지난 2018년 스페인에서 페드로 산체스 총리와 서 있다. AP=연합뉴스

이어 “(우크라이나 해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라며 “특히 영토 보존을 존중한다는 유엔 헌장의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하며, 현재 우크라이나는 푸틴 대통령에 의해 영토를 침해당한 상태”임을 강조했다. NYT는 “스페인은 우크라이나의 레오파르트2 등을 지원하는 확고한 동맹국이며, 오는 7월 EU 의장을 맡게 되는 산체스 총리는 어느 때보다 외교적 영향력이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中-유럽, 관계 개선은 미지수

유럽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높인 상황에서 시 주석과 유럽 정상간 잇따른 만남이 양측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외신들은 내다봤다. 특히 시 주석의 평화 중재안은 푸틴 대통령으로부터도 ‘서방이 먼저 준비가 돼야 한다’는 조건부 지지를 얻는 데 그쳤고, 시 주석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통화 역시 성사 여부가 미지수인 상황에서 중국의 평화 중재안이 유럽 지도자들에게 딱히 매력적이지 않을 거란 의미다.

폴리티코는 서방 분석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대만을 둘러싼 미·중 군사적 갈등 고조, 유럽 각국에서 중국의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사용 제한 조치, EU 원자재 법으로 희토류·리튬 등에 대한 탈(脫)중국 행보 등 시 주석의 대유럽 관계 개선을 위한 여건이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다음달 초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있다. A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다음달 초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있다. AP=연합뉴스

EU "우크라 지원용 탄약, 한국서 구매할 수도"

한편 EU는 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EU 외교·국방장관 회의에서 잠정 합의한 대로 우크라이나에 12개월에 걸쳐 탄약 100만 발을 지원하기로 최종 승인했다. 유럽평화기금(EPF)에 예치된 기금 총 20억 유로(약 2조8000억원)가 투입된다.

EU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의 안정적·지속적 지원과 각국 재고 확충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EU 자체 예산을 투입해 역내 방산업계의 역량 강화도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EU 예산이 최대 5억 유로(약 7000억 원) 활용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수사당국 관계자가 7일(현지시간) 동부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이 투하한 포탄과 미사일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사당국 관계자가 7일(현지시간) 동부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이 투하한 포탄과 미사일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날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원활한 공급을 위해) 역외 국가에서 탄약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수 있다”며 그 예로 한국을 직접 거론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우리는 EPF를 활용해 더 많은 탄약의 공동구매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예를 들어 한국은 아주 많은 포탄과 로켓탄을 보유한 나라로, 우리는 그곳(한국)에서 탄약 구매를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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