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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여읜뒤 '반항기'...'슬픈 4살' 얼룩말 세로에 여친 붙여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4일 오전,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 ‘초식동물마을’의 얼룩말 우리에 ‘뚝딱뚝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업자 5명이 부서진 나무 데크를 수리하고 있었다. 빈 얼룩말 우리에는 바로 옆 우리에 살고 있는 캥거루들이 뛰어다녔다. 사육사는 “보수작업을 할 때까지는 관람 중지할 것”이라며 “얼룩말은 내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안내했다.

아빠 ‘가로’ 죽고 홀로 남은 세로…부쩍 예민해져  

24일 오전, 얼룩말 '세로'가 생활하는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의 초식동물마을 우리. 왼쪽 목제 울타리 너머에는 캥거루가 생활하고 있다. 최서인 기자

24일 오전, 얼룩말 '세로'가 생활하는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의 초식동물마을 우리. 왼쪽 목제 울타리 너머에는 캥거루가 생활하고 있다. 최서인 기자

이곳에 살던 4살짜리 수컷 그랜트 얼룩말 ‘세로’는 전날 오후 2시40분쯤 나무 우리를 부수고 나와 시내로 내려갔다. 천호대로를 달리다 방향을 틀어 주택가로 들어간 세로는 경찰·소방과 어린이대공원 관계자들에 의해 포획돼 오후 6시쯤 어린이대공원으로 돌아갔다. 자전거 등 일부 기물이 파손됐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세로는 2019년 6월 수컷 ‘가로’와 암컷 ‘루루’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난 23일 10차선 대로를 내달린 세로는 2년 전만 해도 겁쟁이였다고 한다. 2021년 6월 유튜브 ‘서울시설공단TV’는 도토리나무 이파리를 먹는 얼룩말 가족의 모습을 소개했다. 영상 속 세로는 아빠 ‘가로’가 풀을 뜯는 모습을 한참 지켜본 뒤이야 보고서야 냄새를 맡다 풀을 뜯었다. 혼자 서 있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겁쟁이 세로가 달라진 건 가로가 지난해 세상을 떠나고 얼룩말 우리에 혼자 남게 된 뒤부터였다. 1999년생인 가로는 지난해에, 2005년생인 엄마 루루는 3년 전쯤 자연사했다. 그랜트 얼룩말의 수명은 약 25년이다. 이때부터 세로는 나무 울타리 너머에 사는 캥거루에게 싸움을 걸거나 내실에 들어오지 않고 버티는 등 반항했다. 사육사들은 손으로 먹이를 먹이거나 장난감으로 놀아 주면서 유대관계를 높이고 세로를 길들이기 위해 애써 왔다.

지난 2021년 6월 아빠 얼룩말 가로(좌)와 아들 얼룩말 세로(우)가 도토리나무 이파리를 먹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지난 2021년 6월 아빠 얼룩말 가로(좌)와 아들 얼룩말 세로(우)가 도토리나무 이파리를 먹고 있다. 유튜브 캡처

동물학 박사인 조경욱 어린이대공원 동물복지팀 팀장은 “초식동물들은 야생에서 무리를 지어 대응하며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런데 아빠가 죽으면서 홀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예민해지게 된 것”이라며 “특히 바로 옆에 캥거루 가족이 사는데, 우두머리 수컷도 가족을 지키려고 세로를 경계하다 보니 서로 신경전을 벌이면서 서로 물거나 다치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3시간 산책 다녀온 세로…“밥도 잘 먹고 건강”

홀로 남은 세로가 예민해하자 대공원 측은 세로를 위해 미리 짝지어둔 비슷한 연령대의 암컷 얼룩말을 내년 중으로 들여오기로 했다. 당분간은 사육사들이 집중적으로 관리하며 안정을 취하게 할 계획이다. 조 팀장은 “어제 새벽에도 사육사들이 수시로 가서 확인해봤는데, 마치 ‘무슨 일 있었어?’라고 말하듯 천연덕스러운 표정이다. 밥도 잘 먹고 건강하다”고 말했다.

한편 세로가 다녀가면서 전날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주택가도 일상을 되찾았다. 주민 김은자(74)씨는 “태권도 학원 갔다가 돌아온 손주들과 함께 집에도 못 들어가고 6시까지 요 앞 식당에 앉아 있었다. 얼룩말을 싣고 가고 나간 뒤에야 늦은 저녁을 먹었다”며 “펄떡펄떡 뛰어가던 모습이 어찌나 겁이 나던지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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