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절반 이상은 앞으로 30년 뒤에도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북한의 핵ㆍ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해선 62.3%가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국제정치학회(회장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가 1993년 3월 12일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30주년을 맞아 진행한 국제정치 분야의 전문가 146명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3.1%는 지난 30년 간 북핵 문제가 악화됐다고 답했다. 또 향후 30년 안에 북핵 문제가 해결될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55.1%가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북핵 문제가 악화된 원인에 대해선 68.4%가 ‘북한 정권의 의지’를 꼽았다. 김정은 정권이 핵 고도화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한 복수 응답 결과 ‘북한 정권의 정당성 확보’(44.1%), ‘미국으로부터의 안전 보장’(41.9%) 등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했다.
또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55.1%)고 답한 응답자들은 판단의 근거로 ‘북한 체제 존속을 위한 핵보유’를 가장 많이 꼽았고, 해결이 가능하다(28.7%)고 답한 응답자들은 해결의 근거로 ‘북한의 리더십 등 체제 변화 가능성’을 들었다.
결국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전문가들은 북한의 리더십과 관련한 급변동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핵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예상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해선 62.3%가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찬성한다는 의견은 31.5%였다.
자체 핵무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이러한 입장은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와는 차이가 난다. 중앙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6~9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웹설문 조사(95% 신뢰수준ㆍ표집오차 ±3.1%ㆍ비례할당 후 무작위 추출)에서는 자체 핵무장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58.1%로 반대 의견(31.6%)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전문가들이 핵무장에 신중한 입장을 펴는 이유는 핵무장에 따른 국제제재와 군비증강 등 현실론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꼽은 자체 핵보유에 대한 반대 이유는 ‘남북한 핵대결 현실화’(30.9%),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25.9%) 등 현실적 요인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밖에 그동안 비핵화를 주장해왔던 한국의 핵무장에 따른 ‘평화국가 정체성 위협’(19.8%)과, 미국이 우려하는 핵확산에 따른 ‘한ㆍ미동맹 균열 가능성’(17.3%) 등도 핵보유 반대의 핵심 이유로 꼽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효율적인 방식과 관련해선 ‘한ㆍ미 간 확장 억지력 정책 강화와 핵능력 공유’(47.7%)를 꼽은 의견이 가장 많았다. 특히 자체 핵보유가 필요하다고 답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효과적 대안으로 ‘자체 핵무기 보유’ 대신 ‘한·미 간 확장 억지력 정책 강화’를 선택한 비율이 오히려 높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북한과의 '힘의 균형'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로, 미국의 확실한 ‘핵우산’ 제공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향후 전문가 그룹 내에서도 자체 핵무장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