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 탈미(脫美) 나서는 튀르키예, 중국 전투기 구입할까?(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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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上)편 내용과 이어집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튀르키예는 지난 2021년 10월, 조 바이든 행정부에 F-16V 신조기 40대와 성능 개량 키트 80세트 판매를 요청했다. 튀르키예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NATO 가입을 승인해 주는 조건으로 미국에 전투기 판매를 요청한 것이다. 튀르키예는 이 계약이 이루어지면 대량의 F110 여유분 엔진도 얻고 후속 군수 지원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나 이 계약은 미 의회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튀르키예는 협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스웨덴 NATO 가입을 불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영국과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구매 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F-16을 팔지 않으면 유럽에서 최대 80대의 유로파이터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튀르키예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유로파이터 컨소시엄의 핵심 구성원인 독일이 튀르키예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유로파이터 도입 주장은 허언이나 다름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튀르키예는 극단적인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러시아, 또는 중국에서 전투기를 들여오는 것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오른쪽)이 러시아 모스크바 동남쪽 도시 쥬콥스키에서 열린 국제항공·우주박람회(MAKS 에어쇼)에서 러시아제 5세대 최신 전투기 Su-57을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오른쪽)이 러시아 모스크바 동남쪽 도시 쥬콥스키에서 열린 국제항공·우주박람회(MAKS 에어쇼)에서 러시아제 5세대 최신 전투기 Su-57을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에르도안의 외교·안보정책 책사 역할을 해온 대통령 직속 외교안보자문위원회 위원이자 앙카라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카그리 에르한 박사는 3월 초, 러시아 관영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에르한 박사는 “미국이 F-16 전투기 판매를 승인한다고 해도 낡고 구식이며, 경쟁력이 없는 그런 전투기 구매에 200억 달러나 쓰는 것은 터무니없다”면서 튀르키예 정부는 미국에 F-16 구매 요청을 철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르한 박사는 튀르키예가 최근 개발한 중장거리 지대공 미사일과 S-400 시스템을 조합하면 방공 전력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여유를 바탕으로 다른 전투기 대안을 찾아야 한다며 그 답으로 유럽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프랑스의 라팔(Rafale), 러시아의 Su-35 또는 Su-57, 중국의 J-10C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독일의 제재 때문에 도입이 불가능하고, 라팔은 ‘적성국’인 그리스가 도입한 기종이어서 에르도안이 기피하는 기종이다.

Su-35와 Su-57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방위산업 경쟁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주문하더라도 도입이 불가능한 물건이 됐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단 한 가지 기종이다. 바로 중국의 J-10C다.

중국의 청두 J-10 전투기. [사진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PLAAF)]

중국의 청두 J-10 전투기. [사진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PLAAF)]

튀르키예는 J-10C 운용국인 파키스탄과 TF-X 공동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파키스탄 기술자들이 앙카라로 가서 기술 개발을 함께하고 있다. 역으로 튀르키예 기술자들도 파키스탄항공산업(PAC : Pakistan Aeronautical Complex)과 대학에 파견돼 파키스탄과 공동으로 항공기 개발과 관련된 연구 사업들을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친중 국가 파키스탄이 튀르키예의 중국제 전투기 도입에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튀르키예와 중국은 위구르족 문제 때문에 상당 기간 불편한 관계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에르도안은 오스만 제국의 향수를 자극하며 자신을 범튀르크주의 맹주로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핏줄인 위구르족에 대한 강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는 중국에 저항하는 위구르족 지하 저항 단체인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 : Eastern Turkistan Islamic Movement)을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위구르족보다는 중국과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튀르키예 내에서는 최근 중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를 끌어낸 것에 대한 큰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며 무기를 팔아왔다면, 중국은 건설적인 중재자로서 중동에서 수십 년 묵은 갈등을 해결한 책임 있는 강대국이라는 평가가 퍼지고 있다.

미국이 튀르키예의 신무기 획득을 막으면서 튀르키예의 원수인 그리스에 대규모 군사 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도 튀르키예의 친중화 불길 확산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미국은 튀르키예에는 판매하지 않은 F-16 개량 패키지는 물론, F-35까지 그리스에 판매했고, 최근에는 대량의 장갑차를 무상 또는 염가에 공급하며 그리스군 현대화를 돕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첨단 무기를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한국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면 한국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 보자. 그러면 지금 튀르키예에서 흐르는 반미 기류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튀르키예가 J-10C 구매를 결정하고 이를 시행한다면, 미국은 NATO에서 튀르키예를 축출하고, 그리스·루마니아의 군사력을 크게 강화시켜 다르다넬스·보스포러스 해협 진입로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튀르키예를 압박하려 할 것이다. 튀르키예에 대한 무기·부품 공급도 모두 끊겠지만, 튀르키예는 이에 대한 대비를 충실히 해 왔기 때문에 중국이 조금만 지원해 준다면 짧은 시간 내에 무기체계 전반에서의 대미 의존도를 급격하게 낮출 수 있다.

2016년 6월 터키의 연례 공군훈련 ‘아나톨리안 이글’을 위해 모인 F-16. [사진 셔터스톡]

2016년 6월 터키의 연례 공군훈련 ‘아나톨리안 이글’을 위해 모인 F-16. [사진 셔터스톡]

미국은 지난 2014년, 튀르키예에 F-16 전투기 소프트웨어 소스코드(Software source codes)를 제공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바 있었다. 덕분에 튀르키예는 마음대로 F-16을 뜯어보고, 다양한 공대공·공대지·공대함 무장을 개발해 F-16에 통합(Integration)할 수 있었는데, 전투기용 무장 대부분이 국산화된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이 무장 공급을 끊더라도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전투기 후속 군수지원 차단과 TF-X 개발 지연에 따른 전투기 전력 공백 문제를 해결하고 TF-X 사업을 완주한다는 목표만 생각했을 때 튀르키예 입장에서 J-10C는 대단히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단 F-16V보다 저렴하고 지금 주문하면 2028년 이후에나 받을 수 있는 F-16보다 납기도 빠르다. 전체적인 성능 면에서도 F-16V와 거의 대등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TF-X 완성 전까지의 전력 공백을 메울 과도기 전력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그리스 공군의 라팔 스탠더드 F3 전투기를 상대해야 하는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이미 중국과 파키스탄이 ‘라팔 킬러’로 전진 배치해 운용 중인 J-10C를 상당히 매력적인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미국·NATO와 척을 진 튀르키예가 파키스탄과 함께 J-10C 전투기를 구매하고, 중국 측에 기술 이전을 요청할 경우, 중국은 J-10C 전투기에 튀르키예 무장 통합을 승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TF-X 개발도 지원할 수 있다. 중국은 엔진과 레이더, 항공전자장비 대부분의 분야에서 5세대 전투기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튀르키예를 확실하게 끌어안기 위해 전투기 기술 공유 등 적극적인 협력에 나설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튀르키예까지 친중 진영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할 경우 중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실책으로 반미·친중 노선을 타기 시작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카타르 등의 다른 중동 국가들과 튀르키예를 묶어 중동 지역에 강력한 반미 블록을 형성하고 패권 경쟁의 판을 새롭게 짜는 전략적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오른쪽)이 SCO 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오른쪽)이 SCO 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튀르키예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9월 다른 NATO 동맹국은 중국을 ‘위협’으로 규정하고 중국을 위협 요소로 넣은 새로운 안보 전략을 구상했다. 그때 에르도안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국빈 초청해 자국의 ‘중간회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연계해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을 심화시키자고 합의했다. 에르도안은 튀르키예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견지할 것이라고 천명했고 UN은 물론 G20과 상하이협력기구 등을 통해 중국이 주창하는 다자주의를 적극 지지해 나가겠다고도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튀르키예가 J-10C를 도입할 경우 중동 정세는 물론 동부 지중해 일대의 국제 질서가 근간부터 흔들리는 일대 사건이 될 수도 있다.

튀르키예에서 나온 중국 전투기 도입론은 미국과 유럽 정치권에 팽배해 있는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가 국익에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은 사망하기 전에는 그런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던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집착해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맹방을 잃었고, 에르도안의 기행(奇行)을 포용하지 못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튀르키예라는 동맹국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미국이 튀르키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지 않는다면, 이번 J-10 전투기 도입론을 시작으로 튀르키예의 탈미·친중화는 더욱 심화할 것이고, 이로 인한 미국의 전략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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