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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버라드 칼럼

미사일 발사에 올인하는 북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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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이 지난 13일부터 시작한 한·미 연합 군사연습인 ‘자유의 방패(FS)’ 훈련에 대응해 12일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2발, 14일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 16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1발 등을 연이어 발사했다. 가공할만한 군사력을 과시한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실상도 그럴까.

이번 미사일 도발은 개발, 혹은 개선 중인 미사일의 성능 테스트일 수 있다. 아마도 발사 시기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반응으로 국제 사회에 비치도록 계산했을 수 있다. 방어 훈련이라 주장해 추가적인 유엔 안보리 결의안 도출 가능성을 낮추려는 속셈일 수 있다.

폭주하는 북한 핵미사일 도발의 노림수. [일러스트=김지윤]

폭주하는 북한 핵미사일 도발의 노림수. [일러스트=김지윤]

북한 정권은 잇단 미사일 발사의 목표가 한·미의 북한 공격 가능성에 대한 경고라고 주장한다. 지난 17일 노동신문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전면전쟁을 가상한 도발적인 북침 실동연습이자 핵 예비전쟁’이라고 비난했다. 서울이나 워싱턴이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힘의 과시라기보다 오히려 얼마나 힘이 없는지를 보여준다. 한·미의 공격에 대한 군사적 대응력을 보여주기엔 북한이 지금껏 보여준 것아 너무나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일련의 미사일 발사를 통해 북한이 이루지 못한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한 북한의 합리적 대응은 재래식 훈련을 따라 하며 한·미의 어떠한 공격도 북한의 효과적인 재래식 대응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어야 했다. 그러나 재래식 군대가 초라한 수준인 북한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군대 규모는 클지 몰라도 무기·장비 수준은 일부 엘리트 군인을 제외하고는 비참한 수준이며 연료와 부품 부족을 줄곧 겪고 있다. 둘째, 7차 핵실험이 없었다. 아마도 중국의 압력으로 실험 계획이 수포가 된 듯하다. 코로나19 정책 실패와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3기를 맞아 정권 안정에 집중해야 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앞마당’에서 어떤 문제도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더구나 시 주석의 러시아 국빈 방문에 쏠린 세계의 이목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다양한 미사일 발사가 아마도 유일한 선택지였을 거다. 그러나 미사일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군사력은 네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이 시작되면 미사일 무기가 놀라운 속도로 바닥난다. 북한의 미사일 무기가 얼마나 다양하게 많은지는 알 수 없으나 전쟁이 터지면 곧 바닥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둘째, 북한 군수품의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우크라이나군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쏜 포탄이 날아가다 중간에 터져버린 사례가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포탄은 북한이 지원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처럼 완전히 부패한 사회에서 포탄보다 훨씬 정교한 관리가 필요한 미사일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발사 자체가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민첩한 대규모 무인기의 미사일 공격 능력이 입증됐다. 지난해 12월 26일 북한이 무인기 다섯 대를 한국으로 침투시켰지만, 북한이 무인기를 미사일과 함께 활용해 효과적으로 목표물을 명중시킬 노하우가 있거나 현대전에 필요한 수준의 무인기 규모를 갖췄다는 증거는 없다.

넷째, 북한 미사일 실험의 중심에 있는 ICBM 화성-17형이 심각한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단거리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기에 운송할 수 있고 연료를 미리 공급할 수 있어서 발사장으로 이동해 발사하기에 용이하다. 하지만 화성-17형은 액체 연료를 사용하기에 연료 공급 후 운송이 불가능하다. 발사대에 올려놓고 수 시간 연료를 주입하는 동안 공격받을 수 있다. 화성-17형이 미국 본토를 핵탄두로 위협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만약 미사일이 적절한 방어 수단이 아니라고 북한이 판단한다면 핵무기는 실질적 억지력보다는 협상의 패로서 가치가 더 크다고 보고 핵무기 포기를 위한 연이은 협상에 응할지도 모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이 솟구치는 미사일을 바라보며 환호하면서 적들이 이를 보고 공포에 떨 것이라 계속 착각한다면 협상 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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